산행기

각화산(覺華山1,177m)과 왕두산(王頭山1,045.6m) ---경북 봉화 춘양면의 오지산 산행기

월매스 2010. 4. 26. 20:06

각화산(覺華山1,177m)과 왕두산(王頭山1,045.6m) ---경북 봉화 춘양면의 오지산 산행기

산행일자;2010년 04월25일. (일). 날씨; 쾌청한 봄날. 도상거리;7.0km  산행시간;약 3시간 20분

 


 


 



 






각화산(覺華山1,177m)과 왕두산(王頭山1,044.3m)은 경북 봉화 춘양면과 소천면의 경계를 이루는 오지의 산으로 나란히 솟아 있다.

 

백두대간이 경상북도와 강원도의 경계를 이루며, 태백산에서 구룡산 방향으로 용틀임 하듯 뻗어나가다 [부쇠봉=수다산]에서 갈라져 내려온 한 줄기에 위치한다. 즉 태백산에서 문수봉쪽으로 가면서 오르게 되는 첫번째 봉우리가 [부쇠봉]이고, 이 봉우리에서 백두대간이 갈린다. 백두대간을 따라 남서방향으로 흐르다가 서향하면 백두대간이고, 그대로 남쪽으로 빠진 산줄기는 각화산-왕두산-형제봉 등 능선을 뻗어 내리다가 법전리에서 끝나는데 각화산과 왕두산은 육산의 풍모를 갖추고 있다.

 

각화산과 왕두산 2산의 등산로 초입에 있는 각화사(覺華寺)는 신라 문무왕 12년(676)에 원효대사가 지금의 춘양면 서동리에 있던 남화사(南華寺)를 폐하고, 여기로 옮기면서 ‘남화사를 생각한다’는 뜻으로 각화사(覺華寺)라 명명하고 고려 숙종 6년(1100년)에는 무애국사 계응이 중창했다.

 

각화사는 여느 절집과는 달리 일주문도 찾아볼 수 없지만, 범종각 추녀 끝에 ‘태백산각화사(太白山覺華寺)’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현판이 범종각 건물에 걸린 것도 보기 드문 일이지만, 각화사와 실록을 보관했던 사고(史庫) 등에 태백산이 붙는다. 이는 이 지역이 태백산을 모태로 삼고 있다는 증거다.

 

높다란 석축 옹벽가운데의 가파른 36개의 돌계단을 올라서면 바로 각화사의 범종각이다.범종각은 건물 뒤편에서 바라보면 ‘월영루(月影樓)’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범종각 오른편의 석탑은 모습이 매우 왜소하다. 신라 말이나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각화사는 한창 번성하던 때에는 수도승이 800명에 이르는 조선 3대 사찰의 하나로, 태백산 사고의 관리 임무를 맡았던 절이다.

 

사고(史庫)는 조선시대에 실록등 귀중한 문헌을 복사하여 태백산(각화산)사고, 강화도 사고, 무주 적상산사고, 오대산사고등에 각각 분산 안치하여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게 한 것이다. 각화산 산사면에 있던 사고의 전적은 모두 서울로 옮겨져서 보관되었으나 각화산의 사고터에 있던 2채의 건물은 해방이후 불타버리고 지금은 그 유허만 남아있다.

 

사고(史庫)는 조선시대에 실록등 귀중한 문헌을 복사하여 분산 안치하여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게 한 것이다.태백산(각화산) 사고는 한양의 춘추관사고, 강화도사고, 묘향산사고,(무주 적상산사고?) 오대산 사고와 함께 조선 후기 5대 사고 중 외사고(外史庫)의 하나로, 선조 39년(1606년)에 설치돼 일제시대인 1913년까지 300여 년간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곳이다. 각화산 산사면에 있던 사고의 전적은 모두 서울로 옮겨져서 보관되었으나 각화산의 사고터에 있던 2채의 건물은 해방이후 불타버리고 지금은 그 유허만 남아있다.

 


각화사 주변은 봉화군 군목(郡木)으로 정해진 춘양목이 빽빽히 들어서 있다.

적송이라고도 하는 이 춘양목은 키가 크며, 곧고 단단해서 목재로 더없이 적합한 수종이다. 조선 말기,대원군이 경복궁을 다시 지을 때 대량으로 베어서 쓰기도 했는데 그후, 무분별한 벌채로 숫자가 많이 줄어 든 나무이기도 하다.

 

 

2010.04.25(일) 오지의 산 각화산과 왕두산 등산을 위해 서울 동서울 버스터미널에서 07;40분 출발하는 봉화 춘양행 첫 버스(요금;17,300원)에 오른다. 영주 경유 봉화에서 승객 전부 내리고 약30분후 산에 미친 산꾼 3인만 춘양면 버스터미널에 10;45분 도착(서울에서 약3시간 소요)한다.

 


 

춘양 터미널에서 시간표 촬영후 돌아올 서울행 버스표 예매해 둔다.(막차;18;10분.) 그 앞차는 16;10분으로 산행시간이 약간 애매하여 막차로 예매한다. 터미널 여직원이 054-672-3477로 연락하면 앞차 교환 가능하다고 친절히 안내 해준다.

 

택시로(054-672-3277,054-673-1357,011-331-4658) 약7분 이동중 각화사입구 석현리(공세동)에서 산행 시작 하라는 택시기사의 권도 있었지만 (결론은 각화산을 먼저 올라 왕두산을 치고 헬기장에서 남릉을 타고 석현리 공세동으로 하산 10여km 4시간 30분 코스가 좋았을듯---!) 대형차량 회차장을 지나고 각화사 석축앞 소형 주차장에서 차돌려 약30m 왔던길로 Back하여 “각화사 귀부 돌비석”앞에 선다.

 

즉 각화사 절집이 보이는 지점 오른편 숲속에는 경북 유형문화재 제189호인 ‘각화사 귀부(龜趺)’가 있다. 귀부에 본디 얹혔던 비신(碑身)은 고려 초기의 통진대사비(通眞大師碑)로 전해진다. 그러나 본래의 비신은 간 곳 없고, 대신 거기에 “각화사기적비”를 세우고 비석머리도 새로 만들어 얹었다. 귀부의 모서리가 약간 파손됐으나 대체로 원형이 잘 보존된 고려 초기의 걸작으로 주목된다. 특이한 것은 몸체의 육각형 귀갑문(龜甲紋) 속에 돋을새김한 ‘왕(王)’ 자와 ‘만(卍)’ 자의 조각솜씨다.


 

등산로 초입 각화사 전 “각화사 귀부 돌비석”앞에 11;00분 도착(요금11,000원) 간단한 산행 준비후 11;05분 산행 시작 한다.

 


 


 


 



 

 

0km 0분[각화사 기적비.귀부]

산행 들머리는 각화사 귀부(각화사 귀부 안내표지판과 각화사 귀부, 기적비석)뒤로 (바로 옆왼쪽으로) 나있는 산행로를 따라 오른다.

 

(cf;각화산을 먼저 오르고자 할 경우에는 각화사36계단 올라 범종각에서 좌측 화장실이 있는 방향으로 나 있는 길을 따르면 되나 스님들이 보면 산행을 막을듯 하다. 하산길에 각화사 공사현장에서 만난 스님왈 “산행하면 안됩니다.”각화산 왕두산이 각화사 절 소유입니까? 스님왈 “네---!“)


 


 



귀부 뒤로 나 있는 제법 넓은 오솔길 산행로를 따라 50m 진행하면 왼쪽 지능선으로 꼬부라지다가 다시 우측 지능선으로 산길이 이어져 오르면 잠시 후 왼쪽으로 나뭇가지 사이로 각화사가 내려다 보이고 우측으로 파란 지붕 민가(암자?) 2채가 있다. 계속된 오르막은 그리 힘들지 않게 오를 수 있어 이곳이 과연 1,000m가 넘는 산인가 생각한다.


 


안부 4거리 갈림길 지나 직진 약30 여분 정도면 금봉암 갈림길에 닿는다. 수행도량이라 일반인의 출입을 금한다는 표지판이 서 있지만 금봉암은 어디 있는지 보이질 않는다 금봉암 갈림길을 지나자 좌측으로 각화산 정상부가 보이기 시작한다. 정상 바로 밑에 묘지와 비석이 보인다. 금봉암 갈림길(출입금지표지판)에서 약 7~8분여를 오르자 드디어 좌측 아래 잡목들 사이로 금봉암이 보인다.


 


 



금봉암을 뒤로 하고 능선을 따라 오르다 우측으로 휘어진 산행로를 따라 오르니 공세동 버스정류장(석현리 각화사 입구)에서 시작되는 능선과 헬기장에서 만난다.[1.3km][52분]

 


 


 

1.3km 55분 [헬기장=공세동 석현리 하산로 갈림길]

택시 기사 추천대로 이쪽길을 택할걸 생각해본다. 오른쪽 산행로가 비교적 선명하다. 헬기장에서 조망 양호하다. 가야할 각화산과 왕두산에서 오르는 능선도 뚜렷하고 좌측은 문수산이 보이고 우측은 백두대간 과 구룡산이다.

헬기장에서 왼쪽으로 90도 꺾어 약 8분 오르니 왕두산 정상이다.[0.2km][8분]

 


 


 


 


 



 



 



 



 

1.5km 60분[왕두산 정상]1,045.6m

정상은 삼각점과 초라한 작은 정상 표지목이 서있다. 시야는 막힘이 없으나 주변은 다소 협소한 편이다. 백두대간 능선과 낙동정맥능선이 아름답게 조망된다.

정상에서 각화산을 향해 왼편(북)향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을 따라 약5분 내려 가면 안부다. 좌측 갈림길은 금봉암 하산길이다. 갈림길에서 직진 주능선을 타고 10분 정도 가면 급경사길이 시작되어 10분정도 진행하면 바위 능선에 도착한다.


 


( 점심겸 간식 시간으로 15분정도 보낸다.)

 

10여분 더진행하니 왼쪽으로 갈림길 나온다. 갈림길에서 왼쪽길은 사고지를 경유하여 각화사로의 하산길이다. 바쁜것도 없는데 헬기장에서 하산길에 사고지로 들릴 요량으로 사고지를 다녀 오지 못한 우를 범한다.

 

<정보부족;하산은 헬기장에서 사고지~각화사로 가능하나 너무 급경사길이다. 통상 하산길은 정상과 헬기장 전 3거리에서 정상과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지능선길이다. 따라서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5분 정도 내려가면 태백산 사고지에 닿는다. 철제 울타리가 쳐진 사고지는 주춧돌만 찾아볼 수 있을 뿐 허물어진 채 방치되어 있다. 그러나 당시 식수로 사용했을 것으로 보이는 샘터의 물맛은 산뜻하고 시원하다. 샘터 옆 바위에는 누구의 성명인지 새겨진 각자가 선명해 얼굴을 마주하는 듯하다. 봉화 지역은 전란을 피할 수 있는 10승지 중 하나로, 풍수상 이곳은 ‘삼재가 들지 않는 곳’이란다.후답자는 꼭 다녀 오시길---! >


 


 

사고지 갈림길에서 오르막을 하나 오르자 잠시 후 동봉=헬기장공터(삼각점;춘양205/2004년재설)다. 좌측으로 사고지경유 각화사 하산길 있다.여기서 50m 거리에 왼쪽 하산길 3거리가 나오고 동봉=헬기장에서 5분여 오르면 잡목들로 우거진 각화산 정상이다. [3.0km][80분=15분 점심시간 포함]

 


 


 


 


 


4.5km 140분[각화산 정상]1,177m

정상은 특별한 표석이나 특징 없이 잡목 숲에 가린 조그만 헬기장이다. 정상부에 어떤 산우님이 걸어 놓은 좀 퇴색된 “각화산 표지판” 하나가 반겨준다. 주변 조망은 잡목들 때문에 그렇게 좋은 편이 못된다.

 

각화산 정상에서 우측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가면 구룡산~태백산의 백두대간과 조우하게 되고, <정면으로 나 있는 길을 따르면> 석현리와 애당리 사이의 능선으로 빠지게 된다.

 

“각화산 표지판” 배경으로 증명사진 남기고 , 동봉= 헬기장 까지 Back하여 사고지경유 계곡길 당초 하산 계획을 변경하고, 하산은 정상과 동봉=헬기장 사이 3거리까지만 Back하여 3거리에서 오른쪽(서)향으로 내려간다. 하산길은 오른편 비탈길로 이어 지면서 약 5분후 정상과 일직선으로 이어 지는 지능선에 닿는다.


 



 


 

지능선에서 부터 외길로 이어지는 정남쪽 지능선 길 을 따르면 약 5분 후“김해김씨 연일 정씨 합장묘” 가 나오고 약 10여분 후 두 번째 묘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이어간다.

왼쪽길을 따르다가 오른편 비탈길이 지능선 길로 이어져 약 15분 정도 내려가다가 지능선 버리고 왼쪽 길로 내려서면 각화사 경내다.[2.5km][60분]


 



 


 





 

7.0km 200분[각화사]

각화사 경내 구경하고 도로따라 약 30m 내려오다가 산행기점 각화사 귀부 기적비 앞에서 원점 회귀 산행 마감한다.



 


 


 


 


 



계곡에서 알탕하고 옷 갈아입고 아침에 타고온 택시 콜하여 춘양 터미널 근처 강동 회관에서 4시10분 버스는 일찍히 보내버리고 갈비살 굽고 버섯 찌개백반에 복분자 취흥에 젖어 깨끗하고 호젓한 우리 산꾼들만의 산행에 행복한 반추의 시간을 보낸다.


 


 




예매해둔 6시10분 버스로 춘양터미널 출발 동서울터미널 10시15분 도착 전철로 11시10분 집에와서 샤워하고 짐 정리후 오지의 1,000m 급 산 2개를 해낸 기쁨을 간직한채 꿈나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