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

동학농민혁명(東學農民革命)유적지 문화탐방

월매스 2012. 7. 21. 00:37

 

동학농민혁명(東學農民革命)유적지 문화탐방
□탐방일자;2012년07월19일(목). □날씨 ; 태풍후 쾌청.
□참가인원; 한국전통문화진흥원 회원 39명.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직원2명.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해설자1명.(합42명).
□소요경비;인당 1만원.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전북정읍시덕천면동학로742(하학리산8)
Tel;063-538-2894.담당자;최경훈. 문화유산 해설사 유태길 E-mail;1894@1894.or.kr 인터넷 주소;www 1894.or.kr
동학농민혁명(東學農民革命) 소이 동학난(東學亂)은 이조 후기 사회적 모순이 막다른 골목에 이르고 외국세력의 침입이 날로 더하매 이에 대한 반발로서 고종 31년 일어난 실패한 민중 혁명. 민란(民亂)이다.
1.동학농민혁명(東學農民革命) 전의 사회상.
동학(東學)은 1860연 철종11년 최제우에 의해 창도된 종교로 경상일대를 풍미 하였으나 정부로부터 혹세무민 무리라하여 탄압을 받다가, 2세교주최시형이 나타나 경상, 충청, 전라,강원,황해 평안도까지 교세가 퍼졌다.
고종29년(1892년) 2세교주 최시형은 충복 보은을 중심으로 교조신원운동(1세교주 최재우의 원통함을 풀자는 상소 및 운동)이 실패로 끝나자 불평이 만연된 상태였다.
2.동학농민혁명(東學農民革命) 원인
고부군수 조병갑의 가혹한 부역과 불법적인 수세징수가 도화선이 되어 동학교도 정봉준등이 중심이되어 일어난 난리는 확대 되어 이조봉건사회의 압박에 대한 동학농민혁명(東學農民革命)으로 발전한다.
1)삼정의 문란과 탐관오리의 발호로 민심이 동요되고 외세의 갈등으로 개화파와 수구파의 갈등이 심하여 정부가 무력화 된 상태.
2)세도정치 이래 계급적 착취에 시달리던 농민으로부터 공명을 얻은 동학운동을 탄압하고 , 교조신원운동을 묵살하여 동학교도와 농민들의 불평을 팽배케 함.
3)전라도 고부군수 조병갑의 극도에 달한 착취와 군민에대한 압박으로 농민 폭동이 일어남.
3.동학농민혁명(東學農民革命) 소이 동학난(東學亂)의 경과
1)동학교도 전봉준을 중심으로 일어난 동학농민교도가 격문을 보내고, 혁명을 일으키매 전라도 고부 군수 조병갑은 도망간 상태에서 전라도 고부 관 창고, 군기고를 점령 한다.
2)중앙정부로 부터 조병갑의 실정조사와 난민수습책임을 지고 파견되어 온 안핵사 이용태가 오히려 책임을 동학교도에 있다고 전가 동학교도를 체포하고 거처를 불태우고, 처자가지 죽이는 만행을 하여 2차 동학농민혁명(東學農民革命) 소이 동학난(東學亂)이 발발한다.
3)고부의 동학교도 뿐만 아니라 이웃 태인, 금구, 부안의 도학교도와 농민이 합세해 커진 세력이 중앙정부 양호초토사 홍계훈이 이끄는 정부군을 장성싸움에서 패퇴 시키고 정읍, 태인, 김구를 거쳐 4월27일 전주를 함락한다.
4)중앙정부는 6월1일 동학농민혁명군(東學農民革命軍)에게 연이은 관군(官軍)의 패퇴에 위기 의식을 느끼고 청나라에 원병을 요청한다.
5)청나라 군대가 진주하니 천진조약을 이유로 일군이 진주하여 6월5일 청일전쟁이 발발한다.
6)척왜양창의(斥倭洋倡義)를 기치로 전봉준 동학농민혁명군(東學農民革命軍)은 전주, 공주,남원일대에서 세력을 크게 떨치었으나 관군과 청일전쟁에 승리한 일군의 의해 공격받아 11월에 전봉준은 순창에서 체포되고 이듬해 사형을 받음으로써 실패한 동학농민혁명(東學農民革命)이 된다.
4.동학농민혁명(東學農民革命)의 실패원인
1)봉건적인 지배체제에 대립될수있는 반 봉건적인 세력의 지반이 아직 성장되지 않았다.
2)2세교주 최시형 영도하의 동학교도가 저극적으로 참가하지 않했다.
3)농민의투쟁의지가 약하여 시종일관 지속되지 못했다.
4)조선 정부의 청나라에 원병요청이 청일전쟁이 되고 승리한 일군이 관군을 도와 근대적 무기로 동학농민혁명군(東學農民革命軍)을 패퇴시켰다.
5.동학농민혁명(東學農民革命)의 실패 결과 및 역사적의의.
동학농민혁명(東學農民革命)의 실패 결과는 1)이조 봉건 체제의붕괴 초래 2)일제의 내정간섭 초래 3)청일전쟁의 유발4)일본의 식민지화 촉진의 발단이 되었다.
동학농민혁명(東學農民革命)역사적의의는 동학교도가 주동이되어 일어난 농민 봉기로 특권계급에대한 무력적인 사회혁명운동으로 대내 대외적으로 우리민족사상 큰 역사적 의미를 갖는 사건이다.
재단법인 아시아문화교류재단 부설 한국전통문화진흥원,영문 명칭은 ACEF Korean Heritage Institut.공식적인은 명칭 “ACEF 한국전통문화진흥원은“1. 전통문화의 보존, 보호, 조사, 홍보 및 활용방안과 관련한 사업/2. 전통문화 관련 전문 인력 양성교육 사업/3. 전통문화 관련 학술행사 개최 및 지원사업/4. 전통문화 조사, 연구 및 학술보고서 간행 /5. 전통문화 기록화 및 전시 사업 /6. 다문화 학술교류 및 지원 사업 등을 목적으로 우수한 회원들이 왕성한 활동을 하는 비영리재단법인입니다.
2012.07.19(목)07;10분 “ACEF 한국전통문화진흥원"회원 39명은 제7호태풍 카눈이 비바람을 몰아치는 새벽 압구정 현대 백화점 주차장을 출발 운영진의 인사말과 재단 홍보영상물과 동학농민혁명다큐를 보면서 고속도로를 달려 10;21 정읍 동학농민혁명기념관에 도착 답사에 들어갑니다.
동학농민혁명기념관입니다.
유태길 문화유산 해설사의 강의를 진지하게 듣습니다.
속에 집단을 넣어 구르면서 총알을 피한 기구(장태) 입니다.
사발통문입니다.
기념관에는 관람할 자료가 많습니다.
구 기념관으로 왔습니다.훨씬 고풍스럽습니다.
동학농민혁명의 주역 전봉준 선생(장군?) 동상입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입니다. 송참봉네 조선동네/전북정읍시영원면 장재리 1307/063-532-0054) 남도 한식이 맛갈스럽습니다.
숙박가능 1박 10,000원/ 식비 7,000원
만석보유적지 입니다.보를 막아 수세를 징수한 조병갑의 수탈의 현장입니다.
전봉준 선생(장군?)의 고택지입니다. 생가는 보존 되지 않았다합니다.
노란 목련이 동학농민혁명의 전사자의 영혼 같습니다.
동학혁명 모의 탑입니다.
사발통문을 작성한 집입니다.
전봉준 장군 녹두 기념회관 입니다.
일정을 소화 하고 채석강으로 오는 길에 만난 서해안 바닷가 입니다.
채석강입니다.
신지도 대각산입니다. 귀경길 휴계소에서 입니다.
1차동학혁명 집결지인 감나무터에 새 묘목을 심어 두었군요.
만석보가 있던 평야지대입니다.
회원님들 사진입니다.1
이번 행사에 참여한 좌로 부터 권찬수,허융, 최하경, 배창랑,양승훈 광주서중일고38회동문들입니다.
전봉준 고택에서
마을 정자에서
한치의 오차 없이 39명 회원을 편안하게 인도해주신 한국전통문화진흥원 답사집행위원 인솔자 임인위님입니다. 수고 많았습니다.^ㅎ^^
해설자 유태길님의 강의를 열심히들 듣고 있습니다.
참가하신 회원 여러분들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ㅎ^^
21;10 현대 백화점 주차장 도착 가까운 호프집에서 양승훈 학형이 쏜 생맥주로 뒷풀이하고 집도착하니 24;00 입니다.과음 . 내일 출근이 걱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