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智異山) 도장골.시루봉(1575m).청학연못. 촛대봉1703m. 천왕봉1915.4m. 신 구 문창대(文昌臺) .
산행일자;2012년 7월21일(토요무박).날씨; 비. 산행 거리; 24.6km 산행시간;10시간40분
지리산(智異山)은 3도 (전라북도, 전라남도, 경상남도).1시 4군 (전라북도 남원시, 경상남도 함양군과 산청군과 하동군, 전라남도 구례군).15면에 걸쳐 있는 산이다. 백두대간 끝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지리산이란 이름은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이 된다고 해서 붙여진 산이다.또 백두대간의 맥에서 흘려왔다고 하여 두류산(頭流山)이라고도 불린다. 800여종의 식물과 동물이 서식하여 있고 천왕봉을 주봉으로 수많은 봉우리가 있다. 대한민국 최초의 국립공원(1967년 12월 29일)으로 지정되었다. 지리산은 예로부터 영산으로 추앙받아 왔으며, 이에 따라 고찰이 많으며 흔히 빨치산으로 일컬어지는 조선인민유격대가 활동을 벌여 근,현대 문화적 유적도 많이 남아 있는 산이다.
남한에서 한라산 다음으로 높은 산이다. 최고 높이는 1,915m (천왕봉)이다. 산이 차지하는 총면적은 471.758km²이며, 둘레는 320km에 달한다.천왕봉(1,915m), 반야봉(1,732m), 노고단 등을 잇는 25.5km의 주능선 상에 제석봉(1,806m)삼도봉(1,533m)토끼봉(1,538m), 명선봉, 영신봉, 촛대봉(1,703m) 같은 1,000m를 넘는 준봉들이 자리를 하고 있다.
지리산은 지리10경을 품고 있는데 10경은 천왕봉 일출/반야봉 낙조/벽소령의 달/세석의 철쭉/불일현폭/노고단의 운해/피아골의 단풍/연하천 선경/칠선계곡/섬진강 맑은물 이다.
비경 속에 서려있는 아물지 않은 상처를 가진 지리산은 골짜기마다 역사의 아픔이 서려 있지 않은 곳이 없다. 이현상이 최후로 사망했다는 빗점골에도, 여순반란사건의 주모자 김지회가 죽었다는 반선에도, 최후의 여자 빨치산 정순덕이 체포된 내원골에도 좌우대립으로 상징되는 우리 현대사의 아물지 않은 상처가 남아 있다.
산이 높으면 골도 깊다. 칠선계곡, 한신계곡, 뱀사골, 피아골,한수골, 도장골, 목동골, 대성골 등의 계곡이 지리산에 안기워 있다. 이 계곡은 각각 남북으로 흘러 낙동강의 지류인 남강의 되어 함양과 산청으로 흐르고, 또 하나는 마이산에서 흘러온 물을 만나 섬진강이 된다. 뱀사골 계곡의 폭포가 있는 곳은 국내에서 수심이 가장 깊은 곳으로 유명하다.
■■지리산 도장골(경상남도 산청)은 '지리산 최다폭포의 한신계곡, 소와 담의 뱀사골, 원시적 경관을 자랑하는 칠선계곡의 특징을 합쳐놓은 것 같다'고 한 표현이 실감납니다. 다만 도장골 하류부는 길이 계곡에서 약간 떨어져 있어 일부러 들르지 않으면 아름다운 계곡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길상사에서 700∼800m쯤 오르면 조그마한 안내문이 붙어 있습니다. '이영회부대 아지트'라 쓰여 있습니다. 이영회는 1951년 5월, 인민유격대가 남부군으로 재편될 때 부사령관을 맡은 인물입니다. 이영회가 직접 지휘한 부대는 여순사건 당시에 입산했던 구빨치산을 주축으로 산청군인민유격대, 진양군인민유격대를 통합하여 재편성한 빨치산부대입니다. 이들은 거창이나 합천까지 활동범위를 넓히면서 가회지서, 대병지서 등에 대한 야간 기습공격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지리산 전설적인 여자빨치산 정순덕이 남편을 찾아 최초로 입산한 곳도 이곳 도장골입니다.
돌담을 쌓은 초소의 흔적이며, 그 위에 은둔지의 돌 흔적들을 바라보며 쓰라린 우리 역사의 상흔을 상기합니다. 그 때의 그 아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깔나무만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라 고 있습니다. 큰 나무 아래에서 무성히 자라고 있는 산죽이 얼굴까지 침범해오지만 길은 뚜렷하게 잘 나 있습니다. 그러다가 계곡을 만날 때면 도장골의 비경이 펼쳐집니다. 반들반들한 바위로 떨어지는 여러 줄기의 와폭은 말 그대로 절경이고, 매끄러운 반석위로 흐르는 물은 신선수(神仙水)입니다. 와룡폭포의 모습이 그렇습니다.
■■청학연못;지리산에 위치해 있다는 전설적인 유토피아인 청학동 들머리 라고도 알려진 곳이 청학연못입니다. 지리주능선의 촛대봉(1703m) 에서 남쪽 능선을 따라 시루봉(1575m) 으로 내려가면 약 1600m 고지의 넓은 평원 서쪽 아래쪽에 청학연못이 위치해 있습니다.청학연못의 길이는 12~18m, 넓이는 7~8m쯤 되는 타원형의 연못 입니다. 연못 북사면의 대슬랩에 몇개의 파자가 새겨져 있는데, 그 뜻을 정확하게 해석하지 못합니다.인구에 회자되는 얘기에 의하면 청학연못에서 심심찮게 용요름 현상이 일기도 하고,이 곳을 다녀간 사람이 50m쯤 가다가 되돌아 보면 연못이 사라지기도 하고, 다시 찾아가면 진짜로 헤메다가 허탕친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청학연못은 탐사자 70~80%가 찾질 못하고 되돌아가는 곳이기도 합니다.
청학(靑鶴)은 날개가 여덟이고 다리가 하나이며 얼굴이 사람같이 생겼다는 상상의 길조입니다. 이 새가 울면 천하가 태평해 진다고 하여 옛날부터 사람들은 청학이 사는 청학동을 신선이 살고 있는 이상향이라고 믿어 왔습니다.불교에서의 피안/아메리카의 엘도라도/모어의 유토피아/제임스힐턴의 샹그리라/도연명의 무릉도원 등도 같은 의미 인 듯 싶습니다.
우리나라 삼남지역 사람들은 장대하게 솟은 지리산을 우러러 보며, 지리산 어딘가에 청학동이 있을 것이라 믿어 왔습니다. 함경도에서는 오복동, 제주도에서는 이어도, 울릉도에서는 가삼도와 같은 이상세계를 꿈꾸어 온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지리산에는 청학동으로 추정되는 곳으로/세석고원/덕평고원/청암 학동/불일폭포/피아골/악양 청학이골/고운동/새밭고원 등이 있는데, 이를 8청학이라 부릅니다.
■■시루봉(1575m)은 지리 주능선상의 촛대봉(1,703m)에서 남쪽 능선을 따라 내려 오다가 시루를 엎어 놓은 것처럼 보이는 봉이 시루봉(1575m)입니다. 맑은 날은 지리조망터이기도 합니다.지리산에도 아름다운 설악의 연봉이 있나 할 정도로 풍광이 뛰어난 산입니다.
■■고운 최치원의 유적지로 알려져있는 진짜 (구)문창대는, 최치원이 함양태수로 있을때 법계사에 자주왕래하면서 이곳에 올라 멀리서편에 위치한 향적대의 바위에 과녁을 설치해두고 활을 쏘기도 하였으므로 처음에는 시궁대(矢弓臺) 또는 고운대(孤雲臺) ,최치원이 문창후(文昌侯)의 시호(諡號)를 따서 문창대(文昌臺)로 개칭 하였다고 합니다.
지리산 문창대를 세간에 처음 알린 사람은 조선중기 영남 사림의 중심 인물이었던 진주선비 부사 성여신(莩査 成汝信)입니다.그는 1617년 중산리 법계사 코스로 천왕봉을 등정한후 칠언고시의 형식으로 기록한 유두루산시(流頭流山詩)를 통하여 법계사를 소개하는 대목에서 문창대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습니다. “황혼 무렵 겨우 법계사에 이르렀네.(중략)동쪽에 걸터앉은 세존봉에는 우뚝한 바위가 사람이 서 있는 듯 / 서쪽에 문창대 솟아 있으니 고운이 옛 자취 남긴 곳이네. / 바위에 고운의 필적이 새겨 있다하는데 험하고 가파른 절벽이라 가볼길이 없네.(하략)”
이렇게 성여신에 의해 문창대가 알려지면서 그이후 칼바위-법계사 코스로 지리산을 등반하고 남긴 여러 선비들의 기록에 문창대가 등장하면서 법계사주변의 명소로 자리 잡혀져 왔던 것입니다.(구)문창대는 1489년 김일손의“속두류록”,1896 강병주의 “ 頭流行記“등에 자세히 언급되고있으며 법게사를 지나 천왕봉을 오르는 길 내내 뒤돌아 보면 세존봉의 우측에 보이는 바위로서 형상또한 특이하고 뚜렷하여 예사로운 바위가 아님을 느끼게 한다.가짜(신)신문창대가 지상에 등장하기 전까지 당연한 문창대로 알려졌으며, 지상의 소식에 민감하지 않은 지리산 자락 주민들에게는 현재도 유일한 문창대로 알려진 구문창대는 법게사 남쪽 500M 지점에 위치한 세존봉아래에 있으며,법계사를 가장 극명하게 조망할 수 있는 최고의 조망대입니다.절집의 가람 배치는 물론 자연석 바위에 안치된 유명한 3층3층 석탑 까지도 한눈에 들어옵니다.
지리산에서 명소로 이름난 석대들 중 최고의 높이를 지닌 곳으로 약30여M 의 거대한 바위가 우뚝 서있습니다.겨우 사람하나 지나갈 정도의 석문형태로 이루어진 대의 하단부분을 지나 올라서면 사람 수십명이 앉을수있는 반석지대가 나옵니다. 중대라 일 컷는 반석지대에는 석천이라고 부르는 물이 고여 있는 장정 무릎 높이의 돌구덩이 2곳이 있으며, 주변에는 5~6개의 작은 구덩이들이 무리를 이루고 있습니다.
구덩이는 오랜 세월동안 풍우로 인해서 자연적으로 생긴 일종의 바위의 혈(穴)인것 같은데, 구전에 의하면 이 우물은 7년 대한(大旱)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 신령스런 샘물이라 하며,만일 이 샘물을 퍼서 마르게하면 3일내에 소나기가 내려 석천의 물이 채워 채워진다는 설이 있어서 가뭄이 계속되면 이곳에 올라 석천의 물을 퍼 없애고 기우재를 지내기도 하였다 전합니다.상대라고 부르는 문창대의 꼭대기 부분은 하늘을 향해 곧추선 두 개의 바위가 서로 이마를 맛 대고 서서 반석지대의 광배(光背)와도 같은 형상으로 자연석이라 믿기 어려우리 만큼절묘합니다.판형의 우측 바위에는 근세에 새긴 것으로 보이는 굵은 각자가 새겨저있습니다.각자는 법계사 주변은 물론 절집의 경내에까지 어지럽게 남겨놓은 박정민(朴正民) 각자로서 문창대의 이름을 빌려 [文昌聖祖]운운 했으나 뜻은 알수가 없습니다.
가짜 (신)신문창대는 법주사일주문을 지나서 천왕봉을 오르는 등산로를 따라 곧 나타나는 나무게단이 끝나는 지점에서 좌측으로 비킨 곳에 위치해 있는 바위 지대입니다.즉 천왕봉에서 내려올때 법주사 나무계단이 시작되기 직전 우측으로 비킨곳에 서있는 바위지대를 말합니다.
가짜 (신)신문창대의 생긴 형상은 통상적으로 알고있는 石臺의 조건에 부합하는 모습이 아니고 그냥 지리산 산길 아무데서나 흔하게 만날수있는 두루뭉실하게 생긴 바위덩어리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바위의 남쪽 상단에 고은 최선생 장구지소(孤雲崔先生杖屨之所)라는 각자가 새겨있으며, 글씨는 수려하지 않고 조잡하며 각자를 새긴 연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은 듯합니다. 이 각자가 이곳을 문창대라고 주장하는 근거가 된 것입니다.약 30 여년전 1977년 로타리산장 공사중에 발견 된후 이곳을 문창대라 주장하게 되었습니다.
2012.07.21(토요 무박)으로 J산악회 성삼재~중산리 종주팀을 따라가 종주팀은 2012.07.22(일)03;30 성삼재에서 내리고 밤새 운전해 피곤한 기사님은 버스로 3시간5분을 이동 하여 도장골 산행들머리인 거림 (종주팀 탈출로인 거림)에 2012.07.22(일)06;35도착 바로 산행 시작 합니다.(대중교통으로 도장골 가는방법 ; 남부터미널 12시 출발 04;30 원지도착. 택시로 거림이동 도장골로 들면 됩니다.)
2012.07.22(일) 06;35 거림에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지리산 도장골을 거쳐 시루봉(1575m)에 오르고 청학연못을 답사하고 촛대봉(1,703m)으로 올라 , 천왕봉(1,915m)을 거쳐 세존봉 능선상의 신구 문창대를 찾아보고 로타리산장으로 Back후 순두류로 빠져 황금능선상의 국수봉을 오르고 중산리로 하산하는 코스걔획을 잡았으나 시간상 물리상 국수봉은 다음으로 미루게되었습니다.
0km 0분[ 내대리 거림 대형버스 주차장]
네비에 거림마을을 입력하면 중산리 쪽으로 가버립니다. 내대리를 입력 이정표 방향따라 좌회전 쭉 직진하면 거림 대형버스 무료 주차자장 입니다. 주차장 뒷집은 대간때 그리고 낙남정맥때 포함 여러번 신세진 맛깔스런 음식점 입니다. 주차장에서 진행하다가 세석 대피소길을 버리고 길상사 길상암 방향을 따릅니다.약 15분 이정표 방향따라 오르면 도장골 들머리 길상암 현판 나옵니다.[0.5km][15분]
0.5km 15분[길상암]
한신계곡·뱀사골·칠선계곡 합쳐놓은 도장골을 갑니다.거림에서 세석평전으로 통하는 거림골 주계곡에서 도장골로 발길을 돌립니다. 도장골 초입에 길상사라고 하는 큰절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조그마한 암자였는데 근래에 대대적인 불사를 하여 거대한 사찰로 변했습니다. 길상암 왼쪽길로 접어들어 계곡을 따라 오르면 계곡을 좌측에 두고 우측으로 등로가 보입니다.
도장골에 접어들자 짙푸른 숲과 깔끔한 계곡이 반갑게 맞이합니다. 새벽부터 이장님이 통제를 하고 있습니다.간신히 설득하고 산행길에 듭니다. 수많은 세월이 만들어놓은 둥글고 커다란 바위들과 이런 바위를 타고 넘는 맑은 물줄기가 도장골의 분위기를 알려줍니다. 작은 폭포 하나가 바위 사이를 뚫고 떨어져 짙푸른 소(沼) 하나를 만들었으니 “용소”입니다.
길상사에서 700∼800m쯤 올랐을까요? 조그마한 안내문이 붙어 있습니다. '이영회부대 아지트'라 쓰여 있습니다.
큰 나무 아래에서 무성히 자라고 있는 산죽이 얼굴까지 침범해오지만 길은 뚜렷하게 잘 나 있습니다. 그러다가 계곡을 만날 때면 도장골의 비경이 펼쳐집니다. 뚜렷한 길이 없어지면 계곡으로부터 계곡을 따라 오릅니다. 반들반들한 바위로 떨어지는 여러 줄기의 와폭은 말 그대로 절경이고, 매끄러운 반석위로 흐르는 물은 신선수(神仙水)입니다. “와룡폭포”의 모습이 그렇습니다.[5.0km] [125분]
5.5km 140분[와룡폭포]
폭포는 우측으로 올라 계곡을 건너 이제 계곡을 우측에 두고 계곡 좌측 길을 따라 도장골에서 왼쪽으로 갈라진 촛대봉골로 방향을 잡습니다. 길은 뚜렷하고 여전히 계곡은 깔끔합니다. 대개의 계곡이 상류로 가면 초라해지는데, 이곳만은 깔끔한 품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작지만 정교한 바위와 3∼5m쯤 되는 작은 폭포들이 계속됩니다. 쉽게 찾아보기 힘든 비경입니다. 수량이 적어진 계곡의 물소리는 가냘픕니다.
촛대봉골과 헤어져 좌측 날등으로 오르는 급경사를 올라갑니다 좀 일찍 촛대봉 남릉 능선에 붙어 우측으로 몇 개의 봉을 넘고 숲길로 시루봉까지 갑니다. 무난한 길이며 시루봉 가까이 와서 된비알이며 시루봉 오를때 직벽인데 그냥 오를수 있습니다. 자일 필요없습니다. 암릉을 오릅니다. 날등에서 나무 사이로 살짝 걸친 구름사이로 언뜻 보니 촛대봉의 바위 봉우리가 우람하게 서 있습니다.[3.5km][110분]
9.0km 250분[시루봉]1575m
시루봉에 올라서자 숲이라고 하는 폐쇄된 공간이 해소되고 먼 거리까지 볼 수 있는 조망처가 확보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나쁜 날씨 때문에 아무것도 볼수가 없어 아쉽습니다. 정상 증명사진 남기고 1~2m Back후 (우향)북향 촛대봉으로 방향 잡습니다.
촛대봉으로 이어지는 길은 암릉입니다. 지리산 능선에서 만나는 바위들은 아기자기하지 않습니다. 거칠고 무뚝뚝한 남성미가 넘치는 그런 바위들이고, 암봉입니다. 지리산은 능선의 바위가 그렇듯이 특별히 멋을 부리려고 애쓰지 않아도, 넓고 깊은 품 자체가 매력입니다. 시루봉에서 촛대봉까지는 산죽과 숲길 그리고 촛대봉 오를때 조금 힘듭니다.
오늘의 숙제 청학연못을 향합니다.시루봉에서 촛대봉(1,703m) 가는 길로 가다보면 안부쪽에서 좌측 첫 번재 3거리가 나오고 약간의 오름 오르면 이정표가 되는 좁은 공터 [짜개 바위] 1m 직전 [2번째 3거리]가 나옵니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내림길 내려서서 우측으로 여러 갈래 길이 나오는데 아마도 선답자들이 청학연못을 찾으러 잘못 들어간 길인것 같습니다. 내림길이 부드러워진 펑퍼짐한 곳 우측으로 3~4m 들어가면 청학연못입니다.“배창랑과그일행=山君들” 표지기 2장 걸었으니 후답자에게는 도움이 되겠습니다. 삼거리에서 약 500m 정도거리입니다.[1.5km][30분]
10.5km 280분[청학연못]
청학연못은 시루봉에서 촛대봉(1,703m) 가는 길로 1km 남짓 못가서 삼거리가 나오면 좌측으로 약 500m 정도 내려서야 하는데 정확히 아는분 없으면 워낙 길이 많이 나 있어 찾기가 좀 힘듭니다. 물어서 가야하는데 물을 사람도 산속에는 없습니다. 청학연못 잘 아는 분 같으면 괜찮은데 보통 70%는 길을 못찾아 그냥 되돌아 갑니다.
청학연못에서는 우측으로 숲길을 헤메면서 세석평전으로 가는 길을 버리고 Back 촛대봉 가는 길로 되돌아 나와 삼거리에서 촛대봉으로 갑니다. 천상화원입니다. 암릉이 아기 자기 합니다. 비 때문에 조망이 없어 아쉽습니다. 촛대봉입니다.[1.0km][35분]
11.5km 315분 [촛대봉]1703.7m
촛대봉에서 연하봉쪽으로 가면서 바라본 연하봉 주변의 봉우리들이 운무에 살짝 뒤덮여 신비감을 더해 줍니다. 지리산의 멋은 바로 운무가 봉우리나 골짜기를 살짝 덮었을 때 극치를 이룹니다. 키 작은 구상나무가 고사목과 함께 일정한 질서를 이루고 있습니다. 북풍에 견디느라 가지를 남쪽으로 뻗은 구상나무는 불균형한 것 같으면서도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촛대봉 이정표(천왕봉4.4km/ 장터목대피소2.7km/ 세석0.7km)에서 천왕봉으로 오릅니다. 셀수없이 많이 밟은 지리산 주능선 길입니다. 중간에 연하봉1730m입니다. 연하봉에서 남쪽으로 뻗은 병풍을 친 것 같은 바위 봉우리들이 고사목과 어울려 선경을 이루고 있습니다. 연하봉(1,730m)은 장터목쪽으로 가다가 뒤돌아볼 때 우뚝우뚝 솟은 바위들이 설악산 같은 멋을 내고 있기에 제맛입니다.
장터목산장에 도착합니다. 간식시간과 휴식시간 갖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풍부하던 장터목산장 샘물이 너무 초라하게 적게 나옵니다. 간신히 시간걸려 물을 보충합니다. 천왕봉으로 오릅니다. 제석봉을 지나 통천문을 오르고 능선길 이어 천왕봉입니다. 몇 번째 밟는 천왕봉 정상인지 셈이 잘 안됩니다. 그래도 반갑습니다.[4.4km][130분]
16.9km 445분[천왕봉]1915.4m
정상 증명사진 남기고 우향 중산리 이정표 방향 따라 내려서다가 남강 발원지 천왕샘 석간수를 한잔 합니다. 법계사로 급경사길 내려갑니다. [2.0km][40분]
18.9km 485분[법계사 가짜(신)신문창대]
법계사 일주문~로터리산장 바로 위에 위치한 법계사는 국내에서 가장 높은 해발 1450m에 위치한 사찰입니다. 적멸보궁(寂滅寶宮)이 있습니다. - 부처님 진신사리를 사리탑에 모셨으므로 불상이 없는 전각이 적멸보궁입니다.
오늘의 3번째 답사예정지 문창대로 갑니다. 문창대는 법계사 일주문 서쪽방향 40여m에 위치한 문창대가 가짜(신)문창대]이고, 또 다른 한곳 법계사 남쪽 500m 지점의 세존봉아래에 있는 진짜(구)문창대입니다.
가짜(신)신문창대는 법주사일주문을 지나서 천왕봉을 오르는 등산로를 따라 곧 나타나는 나무계단이 끝나는 지점에서 좌측으로 비킨 곳에 위치해 있는 바위 지대입니다. 즉 천왕봉에서 내려올때 법주사 나무계단이 시작되기 직전 우측으로 비킨곳에 서있는 바위지대입니다. 가짜(신)신문창대의 생긴 형상은 통상적으로 알고있는 石臺의 조건에 부합하는 모습이 아니고 그냥 지리산 산길 아무데서나 흔하게 만날수있는 두루뭉실하게 생긴 바위덩어리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바위의 남쪽 상단에 “고운 최치선생 장구지소”(孤雲崔先生杖屨之所)라는 각자가 새겨있으며, 글씨는 수려하지 않고 조잡하며 각자를 새긴 연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은 듯하다 했습니다. 이 각자가 이곳을 문창대라고 주장하는 근거가 됩니다. 약 30 여년전 1977년 로타리산장 공사중에 발견 된후 이곳을 문창대라 주장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찾아보아도 “고운 최선생 장구지소”(孤雲崔先生杖屨之所)라는 글자가 새긴 바위는 보지 못하고 시간이 없어 인증샷만 남기고 계단길 내려서 법계사 일주문 지나 내림길 내려 로타리산장대피소앞 이정표(중산리3.4km/칼바위2.1km/ 순두류2.8km/중산리5.8km/천왕봉2.0km/식수장30m)에서 진짜(구)문창대를 가기위해 중산리3.4km/ 칼바위2.1km 방향 따릅니다.
진짜(구)문창대]는 세존봉 정상의 8부능선상에 있습니다. 로타리산장에서 망바위방향으로 하산하는 능선을 따라 100m정도 진행하면 <헬기장>이 나타나고 몇 m 진행하면 망바위를 거쳐서 중산리로 가는 일반 등산로는 이곳에서 능선을 버리고 우측사면을 탑니다.
갈림길에서 금줄을 넘어 직진하는길을 찾아 오르막길을 들어가면 세존봉가는 능선길입니다. 세존봉 능선 들머리에 들어서서 한번 올랐다가 얼마가지 않아 내려서면 <안부>입니다.(cf. 안부에서 직진으로 능선길을 고집하는 길도 있습니다.) 안부에서 우측사면으로 우회하는 사면 길을 가면 <거대한 바위>가 나타납니다.(cf 직진길은 석청이있는 바위에 도달 .암벽전문가길)가파른 내리막길을 따라 내려가면 거대한 바위 2개가 기둥으로 받치고있는 문창대가 보이고 그사이로 오르면 선인들의 유람록에 등장하는 <석문>이 나타나고 간신히 바위를 통과 하면 바위를 쉽게 오를수있습니다. 진짜(구)문창대입니다. [1.5km][40분]
20.4km485분 진짜(구)문창대(文昌臺)
고운 최치원의 유적지로 알려져있는 진짜(구)문창대는, 최치원이 함양태수로 있을때 법계사에 자주왕래하면서 이곳에 올라 멀리서편에 위치한 향적대의 바위에 과녁을 설치해두고 활을 쏘기도 하였으므로 처음에는 시궁대(矢弓臺) 또는 고운대(孤雲臺) ,최치원이 문창후(文昌侯)의 시호(諡號)를 따서 문창대(文昌臺)로 개칭 하였다고 합니다.
지리산 문창대를 세간에 처음 알린 사람은 조선중기 영남 사림의 중심 인물이었던 진주선비 부사 성여신(莩査 成汝信)이다. 그는 1617년 중산리 법계사 코스로 천왕봉을 등정한후 칠언고시의 형식으로 기록한 유두루산시(流頭流山詩)를 통하여 법계사를 소개하는 대목에서 문창대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있습니다. “황혼 무렵 겨우 법계사에 이르렀네.(중략)동쪽에 걸터앉은 세존봉에는 우뚝한 바위가 사람이 서 있는 듯 / 서쪽에 문창대 솟아 있으니 고운이 옛 자취 남긴 곳이네. / 바위에 고운의 필적이 새겨 있다하는데 험하고 가파른 절벽이라 가볼길이 없네.(하략)”
이렇게 성여신에 의해 문창대가 알려지면서 그이후 칼바위-법계사 코스로 지리산을 지리산을 등반하고 남긴 여러 선비들의 기록에 문창대가 등장하면서 법계사주변의 명소로 자리 잡혀져 왔던 것입니다. 구문창대는 1489년 김일손의“속두류록”,1896 강병주의 “ 頭流行記“등에 자세히 언급되고있으며 법계사를 지나 천왕봉을 오르는 길 내내 뒤돌아 보면 세존봉의 우측에 보이는 바위로서 형상또한 특이하고 뚜렷하여 예사로운 바위가 아님을 느끼게 합니다.
가짜(신)신문창대가 지상에 등장하기 전까지 당연한 문창대로 알려졌으며, 지상의 소식에 민감하지 않은 지리산 자락 주민들에게는 현재도 유일한 문창대로 알려진 구문창대는 법계사 남쪽 500M 지점에 위치한 세존봉아래에 있으며, 법계사를 가장 극명하게 조망할 수 있는 최고의 조망대입니다. 절집의 가람 배치는 물론 자연석 바위에 안치된 유명한 3층 석탑 까지도 한눈에 들어옵니다.
지리산에서 명소로 이름난 석대들 중 최고의 높이를 지닌 곳으로 약30여M 의 거대한 바위가 우뚝 서있습니다. 겨우 사람하나 지나갈 정도의 석문형태로 이루어진 대의 하단부분을 지나 올라서면 사람 수십명이 앉을수있는 반석지대가 나옵니다. 중대라 일컷는 반석지대에는 석천이라고 부르는 물이 고여 있는 장정 무릎 높이의 돌구덩이 2곳이 있으며, 주변에는 5~6개의 작은 구덩이들이 무리를 이루고 있습니다.
구덩이는 오랜 세월동안 풍우로 인해서 자연적으로 생긴 일종의 바위의 혈(穴)인것 같은데, 구전에 의하면 이 우물은 7년 대한(大旱)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 신령스런 샘물이라 하며, 만일 이 샘물을 퍼서 마르게하면 3일내에 소나기가 내려 석천의 물이 채워 채워진다는 설이 있어서 가뭄이 계속되면 이곳에 올라 석천의 물을 퍼 없애고 기우재를 지내기도 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상대라고 부르는 문창대의 꼭대기 부분은 하늘을 향해 곧추선 두 개의 바위가 서로 이마를 맛 대고 서서 반석지대의 광배(光背)와도 같은 형상으로자연석이라 믿기 어려우리 만큼절묘합니다. 판형의 우측 바위에는 근세에 새긴 것으로 보이는 굵은 각자가 새겨저있습니다. 각자는 법계사 주변은 물론 절집의 경내에까지 어지럽게 남겨놓은 박정민(朴正民) 각자로서 문창대의 이름을 빌려 [文昌聖祖]운운 했으나 뜻은 알수가 없습니다.
당초계획은 진짜(구)문창대(文昌臺) 를 답사하고 로타리 대피소로Back하여 자연 학습원 갈림길로 하산후 다리 건너 국수재1.에서 우향 국수봉 (1,037.5봉)을 오른후 중산리 하산 계획였는데 비 때문에 석문을 통과 하기가 겁나 진짜(구)문창대(文昌臺) 에 오르지 못하고 진짜(구)문창대(文昌臺)옆 급경사 암릉길을 추락하지 않으려고 어렵게 나뭇가지 잡고 중산리 하산길 데크길에 내려섭니다. 이곳에서 10여m 오르면 진짜(구)문창대(文昌臺)를 쉽게 오르겠습니다.
지루하고 미끄러운 중산리 내림길 내려서 칼바위 이정표 만나고 우측 계곡에서 알탕 20여분하고 탐방 지원소에 도착 지루한 아스팔트길따라 17;35 주차장에 도착합니다.[4.2km][155분]
24.6km 640분[중산리 주차장]
근처 음식점에서 병맥주 건배하고 산채 비빔밥으로 허기 달래고 18:00 중산리 출발 양재역
22;30 도착 지하철로 23;15 귀가합니다.
들머리 거림 대형 버스주차장 바로 위 음식점입니다.
도장골 들머리 이정표(세석대피소6.0km/ 길상암/길상선사)이정표입니다. 여기서 도장골은 세석대피소길을 버리고 우향 길상암 /길상선사길 따릅니다.
길상사입니다. 이곳을 조금지나면 길상암입니다.
도장골 들머리 길상암 입간판입니다.여기서 밑길로 가서 도장골로 들어서서 우측으로 오르면 사진 속 출입금지철책뒤 산죽밭길을 만납니다.
도장골입니다.게곡길이 힘들면 계곡을 좌측에 두고 우측으로 길이 잘 발달 되어 있어 따르면 됩니다. 와룡폭포가 가까와 오면 길은 없어집니다. 다시 계곡으로 내려와 계곡따르다가 와룡폭포는 우측으로 우회합니다.
이영희부대 아지트 입니다.
용소입니다.
와룡폭포에 왔습니다. 우측으로 와룡폭포를 지나 계곡을 건너면 좌측으로 길이 열립니다.
시루봉 오름길에 만난 석이버섯입니다.시간이 없어 채취를 포기합니다.
시루봉 암릉오름길입니다.
시루봉에 도착합니다.
증명사진입니다.
청학연못 갈림길 이정표바위(짜개바위) 입니다.
짜개바위 반대편 바위와 작은 공터 입니다.
청학연못입니다.
촛대봉 오름 능선길입니다.
촛대봉 1703m입니다.
촛대봉 이정표입니다.
장터목산장에 도착합니다.
제석봉이정표입니다.
천왕봉에는 사람이 많습니다. 천왕봉 증명사진이 많지만 그래도 한장 남깁니다.
가짜(신) 문창대인데 “고운 최치선생 장구지소”(孤雲崔先生杖屨之所)는 찾질 못합니다.
신문창대 입니다. 석문을 비때문에 위험해 문창대 오르는 것을 포기하고 암릉 내림길 간신히 내려 정상 하산길에 접어듭니다.
칼바위 입니다.
알탕장소입니다.
이제 아스팔트 길로 들어 섭니다. 주차장까지 약2.0km 더 내려가야 합니다.
산행지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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