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

산세가 깊고 험하여 산악회도 외면, 찾는이 없는 오미산[梧味山] 1,071m 산행기

월매스 2010. 10. 11. 23:13

산세가 깊고 험하여 산악회도 외면, 찾는이 없는 오미산[梧味山] 1,071m 산행기    산행일자; 2010년10월10일(일), 날씨; 맑음, 산행거리; 11.7km 산행시간; 약6시간


오미산[梧味山] 1,071m은 경상북도 봉화군 석포면과 울진군 서면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산에 오미자 나무가 많아 오미산(五味山)이라 불렀다 한다. 동쪽 석포면 승부리에 있는 백병산(白柄山:1,159m)을 사이에 두고 물줄기가 발원하여 낙동강 상류로 흘러든다. 산세가 깊고 험하여 안내산악회도 외면하여 특별한 산님외에는 찾는 이가 없다. 1968년 울진·삼척 무장공비사건 때 국군과 공비 간에 전투가 벌어지기도 한 산이다.


‘소리는 침잠하라/소리는 침묵하라/꽃잎과 바람과 눈/별과 달과 나무/천둥새는/이름보다 새 소리로/더욱 살아 남아서/겨울 승부역에 살아 있거라/?`/하늘도 세 평,땅도 세 평/소리가 적막하여 보잘것 없구나/?`’(박해수의 ‘겨울 승부역’ 중에서)


승부는 태백산 자락인 비룡산 오미산 등 1000m급의 험산에 둘러싸인‘육지속의 섬마을’이다. ‘하늘도 세 평'“땅도 세 평” 뿐인 아직도 나무로 군불을 때고 밥을 짓는 오지로 노인들만 사는 작은 마을이다.


오지 오미산을 잡아놓고 접근이 쉽지않아 고민을 많이 해왔다.

 

들머리를 승부로 잡으면 좋으나 청량리 21;10 열차 타고 영주 00;26 도착, 영주 02;44 출발 04;04석포 도착하는 열차편이 좋은데 승부역에 서지 않는다. 영주 06;05출발 승부07;22 (석포07;32) 도착하는 열차는 너무 늦어 무박의 의미가 없다.

태백에서 접근시 대중교통이 많지 않아 택시 이용시 석포까지 2만원~2만5천원, 석포에서 승부까지 1만 5천원 교통비가 만만치 않다.


2010.10.10(일) S안내산악회 당일 낙동 정맥팀(석개재~묘봉~용인등봉~삿갓봉~석포임도삼거리~샘골) 따라 11;05 석포에서 석개재 갈림길 석포 공원에 내려 오미산을 찾는다.





 

0km 0분[석포초교옆 석포공원]

 

낙동정맥팀이나 삼방산팀을 태운 버스는 산행들머리 석개재로 떠나가고 길 물어 석포 시내 아스팔트 도로 따라 오미산 산행 들머리인 영풍상사 사택 으로 이동한다. 능선상 이동통신탑 철탑도 보인다.[0.7km][10분]



0.7km 15분[영풍상사 사택]

 

영풍상사 사택를 좌측으로 두고 모퉁이로 들어서니 수레길 임도가 산쪽으로 형성되어 있다. 그 임도가 능선상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적한 임도에서 10여분 산행준비하고 임도따라 지그재그 오르니 곧 능선에 도착이다. 임도는 계속해서 날등을 따라 잠시 후 무인기지국 시설물이 있는 곳에서 끝이 난다. [0.5km][20분]






1.2km 35분[통신 무인 기지국]

 

좌측으로 무인 기지국을 두고 능선 계단 오름길 오른다. 무인기지국을 지나고도 산길은 비교적 뚜렷한 길로 이어진다. 다만 주변이 오래전 대형산불 때문에 숲과 그늘이 없는 잡목 초원 풍경이다. 세월이 어느 정도 지난 것 같지만 기대한 원시림대신 산불지대 특유의 잡목들이 날등을 차지하고 있어 그늘이 없으니 가을 햇살이 따갑다.

 

10여분 후 작은 묘가 있는 봉우리에 도착한다. 좋은 길은 좌측 능선으로 내려가고 등산로는 희미한 길따라 직진으로 이어간다.

 

능선이 분기하는 낮은 봉우리 690.4봉 (삼각점)오르고 우측으로 굽어 잠깐 내려서더니 다시 급한 오름길이 시작된다.

 

역시 산불지역으로 초지로 이루는 가운데 잡목의 저항이 더욱 드센 느낌이다. 뒤돌아보니 석포시내 내려다 보이고 면산 삼방산 이 조망되고 달바위봉 과 그넘어로 청옥산 태백산이 조망된다. 12분 정도 급한 오름길을 극복하니 산불초소가 있는 봉우리이다. [1.0km][25분]
















2.2km 60분[산불감시초소]

 

초록색 산불 감시초소가 사후 약방문격으로 서있다. 불나기전에 관리를 잘할것이지~!

오를수록 산길이 불투명한 가운데 잡목의 저항은 더욱 드세어지는 느낌이다.

 

이따금씩 몸을 움추리고 빽빽하게 도사리고 있는 잡목숲을 빠져 나가야 하는 곳도 나타나고 때로는 미끄러운 바위지대를 억지로 헤집고 넘어서야 하는 곳도 나타난다. 20여분후 산불지대가 끝나고 잡목의 저항도 없어지고 울창한 오지산세다. 오름길 오르니 능선 분기봉 묵은 헬기장이다.[1.0km][40분]


 





 

3.2km 100분 [능선분기봉/묵은헬기장.]

 

우측(WS)으로도 희미한 산길이 보이지만 오미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은 좌측(ES)이다. 독도 주의 구간이다.

 

전형적인 원시의 능선이 이어진다. 완만한 능선길이 이어진다. 산길의 상태도 비교적 뚜렷한 편이다, 안부에 이르고 노루궁댕이 버섯과 표고 버섯을 수확한다. 이어 잠깐 가파르게 이어지는 오름길을 오르니 또 하나의 무명봉이다.

 

아직도 가야할 오미산은 멀다. 무명봉을 뒤로 하고 산길이 없어지면서 내리막 방향잡기가 약간 애매하다. 그러나 나침반 방향을 잘 잡아 10분 정도 잘 내려서면 다시 오름길로 바뀌는 안부를 대할 수 있다. 이후로 오미산까지는 꾸준한 오름길이다.

 

30분 후 오름길이 끝나면서 밋밋한 봉우리가 앞에 보이기에 벌써 오미산인가 하면서 올라서니 오미산은 아직도 두어 굽이는 더 넘어서야 할 듯 저 건너편으로 올려다 보인다.

이어 산죽이 무성한 지대를 지나 14분 후 또 한 봉우리를 넘는다. 그곳에서도 다시 12분 진행한 후 비로서 오미산 정상에 14;55 도착한다. [4.0km][130분]

 










7.2km 230분[오미산梧味山] 1,071m

 

잡목이 무성한 넓은 공터 한 가운데에 설치한지 얼마 안 되는 삼각점(장성 314, 재설 2004)이 반긴다. 어느 산님이 두릅나무에 부착한 오미산 정상 표지판을 배경으로 증명사진 남긴다. 예정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쉽게 정상을 내주지 않는 산이다.

 

하산을 고민한다. 시간상 백병산은 갈수없다, 오미산부터 낙동정맥 주능선까지 약 70% 정도는 마치 러셀을 하듯 희미한 산죽군락을 헤쳐야 한다는 선답자의 길을 따를수 없다. 안부까지 내려가 [나래기]쪽 하산길을 찾아보나 길은 없어 정상으로 되돌아 온다. 그렇다고 왔던길 Back하여 석포로 되돌아 가기는 싫고 그래서 승부로 하산길을 잡는다.

 

정상에서 10여분 보내고 15;00 정상에서 직진 3~4m 진행 갈림봉에서 (cf 좌향; 안부지나 백병산 낙동정맥 주능선향)우향 승부향 능선길로 접어든다. 잡목이 방해하고 산길이 불투명하지만 그런대로 진행을 할 만 하고, 오지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기분이다.[1.5km][40분]

 

8.7km 270[능선 3거리]

 

앞에 승부역으로 이어지는 능선 3거리가 하산길이 너무 멀것으로 판단되어 직전봉 능선 3거리에서 희미한 길따라 우향 내림길 이어간다.

 

내림길에서 귀중한 능이버섯과 싸리버섯도 수확한다. 망기동 결둔굴 위쪽으로 이어지리라 예상 하면서 내림길 내려선다. 앞에 보이는 봉으로 길이 이어지더라도 안부에서 좌향 내림길이 있으리라 예상한다. 안부라 예상하고 내려서니 웬걸 계곡물소리 시원하고 계곡따라 희미한 길이 좌측으로 이어진다.

 

계곡 안부다. 희미한 길 따라 계곡을 왔다 갔다 하면서 내려서니 우측으로 결둔굴 앞에는 낙동강이 흐른다. 등산화 벗고 강건너 철길로 올라 철길 건너니 배추밭과 할머니 할아버지 사는 오지 독립가옥 나타나다. 독립가옥에서 시멘트 포장길 따라 오르니 승부 석포간 콘크리트 도로에서 산행 마감한다. [2.5km][90분]










11.2km 360분[승부리]

 

석포택시 (011-538-6272 이학형) 콜하고 우측 석포방향으로 천천히 이어간다. 다리 건너 민박 하숙 푯말 있는 독립가옥 지나니 콜한 택시 도착 석포 공원으로 이동(15,000원) 계곡에서 알탕 새옷 갈아입고 준비해온 캔맥주로 건배하면서 오지 오미산을 무사히 해낸 기쁨에 행복해한다.

 

S산악회 제공 된장국에 밥말아 열무김치로 허기진 배 채우고 18;00 석포 출발 천호역에 10;30분 도착 11;30 귀가 샤워하고 짐정리하고 깊은 잠속으로 빠진다.



[경북 봉화 겨울 승부역]


기다림은 추억뿐… 사람이 그립다


먼 기적소리와 함께 영동선 법전 춘양 녹동 임기 분천 등 간이역을 숨가쁘게 달려온 객차 2량의 통일호가 승부역 플랫폼에서 거친 호흡을 고른다. 그리움을 찾아 나선 이들이 고드름을 주렁주렁 매단 기차를 뒤로 하고 얼어붙은 철길을 가로지른다. 한 발 앞선 이들은 잃어버린 추억을 주섬주섬 주워담아 김 서린 차창 속으로 사라지고?`. 겨울 승부역은 다시 익숙한 적막속으로 침잠한다.

 

‘죽도록 그리우면 기차를 타라’는 시집 한 권 가슴에 품고 죽령 옛길과 풍기 인삼밭을 달려 영주에서 봉화까지 강릉행 통일호 열차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겨울 승부역으로 향한다.

 

설경이 아름다운 승부역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때는 1998년 12월 환상선 눈꽃열차가 운행되면서 부터다. 겨울철 눈꽃열차가 인기를 끌면서 기차표를 구하지 못한 여행객들을 위해 무궁화호가 서너차례 한시적으로 정차하는 것을 제외하곤 하루 4번 서는 통일호가 바깥세상을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 통일호를 이용하는 승객들도 장날을 빼면 영주에서 출퇴근하는 역무원과 석포로 등·하교하는 중학생이 전부다.


승부역이 시나 기행문의 단골 소재로 유명해진 것은 ‘승부역은/하늘도 세 평이요/꽃밭도 세 평이나/영동의 심장이요/수송의 동백이다’는 짤막한 시구 때문. 1962년 이곳에 부임해 19년동안 일하다 정년퇴직한 김찬빈씨(영주·75)가 역사가 있던 울창한 송림에서 바라보면 ‘하늘도 세 평,땅도 세 평’이라는 마을 사람들의 말에 착안,1965년 역사 옆 화단 바위벽에 흰 페인트로 한 편의 시를 써놓았다.

 

양철 굴뚝에서 하루종일 푸른 연기가 피어오르는 역마을의 기찻길 옆 오막살이 옆에는 ‘영암선 개통비’가 우뚝 서 있다. 1955년 12월에 개통한 영암선은 강원도의 석탄을 수송하기 위해 영주에서 철암까지 87km 구간에 33개의 터널과 55개의 교량을 세운 그 시절 ‘최대의 역사’. 공사구간 중 가장 힘들었던 승부역에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을 받아 개통비를 세웠다.

 

1963년 영암선이 영동선으로 바뀌고 사람들이 하나 둘 도시로 떠나면서 승부역은 1997년 간이역으로 전락했다. 2001년엔 마주 달리는 기차가 교행을 위해 잠시 대기하는 신호장으로 바뀜으로써 간이역이란 명칭마저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당연히 기차표는 열차 안에서 사야 한다.

 

쓸쓸하던 승부역이 갑자기 활기를 찾는 것은 청량리역을 출발한 눈꽃열차가 400∼500명의 도시사람들을 쏟아내는 오후 1시15분. 산골사람들의 인심이 철철 넘치는 강변 천막장터에선 군고구마와 알밤 굽는 냄새가 구수하게 피어오르고 강 건너 산음골 천막식당은 국밥 말아먹는 여행객들로 발디딜 틈이 없다. 부지런한 여행객들은 산천어가 헤엄치는 계곡을 따라 1.5km의 오솔길 산책도 나선다.

 

얼음기둥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썰매도 타면서 겨울정취에 흠뻑 젖어보는 시간은 겨우 1시간30분. 눈꽃열차가 산굽이 물굽이를 돌아 떠나고 나면 승부역은 다시 적막 강산으로 변한다. 팔다남은 먹거리와 산나물을 머리에 인 승부 노인들이 긴 그림자와 함께 철길을 걷는 모습에서 황혼의 쓸쓸함이 진하게 배어난다.

 

이따금 통일호로 찾은 겨울 나그네들이 승부역의 정취에 반해 얼음을 지치고 오솔길을 거닐다 해가 떨어지고 나면 한평도 안되는 대합실에서 별을 헤며 마지막 열차를 기다린다. 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나 둘?`. 세 평 하늘에 걸린 하얀 별들은 열 손가락 열 번이면 다 셀 수 있다.

 

이젠 떠나야 할 시간. 두세명의 겨울 나그네마저 승부역발 20시19분 열차에 몸을 싣고 나면 사람좋은 2명의 역무원은 첫사랑 연인을 홀연히 떠나보낸듯 그리움과 외로움에 떨며 긴 겨울밤을 하얗게 보낸다.

 

겨울 승부역에는 마침표가 없다. 오고 가는 나그네들의 쉼표와 느낌표만 있을 뿐. 무언가 죽도록 그리울 때면 시집 한 권 가슴에 품고 승부역행 통일호를 타자.<이상 퍼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