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

설악산

월매스 2013. 6. 10. 07:55

초여름 설악(雪嶽)의 안산(鞍山1430m).응봉(鷹峰1208.1m). 십이선녀탕 (十二仙女湯)

산행일자;2013년6월9일(일). (6/8 24;00 토요무박). 날씨;맑음. 산행거리;22.1km 산행시간;10시간50분

 

 

 

 

 

 

 

설악산(雪嶽山1,707.86m.)은 한라산(1,950m)·지리산(1,915m)에 이어 남한에서는 세 번째로 높은 산이며 제2의 금강산이라 불린다. 한가위에 덮이기 시작한 눈이 하지에 이르러야 녹는다 하여 설악이라 불린다고 한다. 산마루에 오래도록 눈이 덮이고 암석이 눈같이 희다고 하여 설악이라 이름 짓게 되었다고도 한다. 그 밖에 설산(雪山)·설봉산(雪峯山)이라고도 불린다.설악산은 최고봉인 대청봉(大靑峯)과 그 북쪽의 마등령(馬等嶺)·미시령(彌矢嶺), 서쪽의 한계령(寒溪嶺)에 이르는 능선을 설악산맥이라 하며 그 동부를 외설악, 서부를 내설악이라 한다.또한 동북쪽의 화채봉(華彩峯)을 거쳐 대청봉에 이르는 화채릉, 서쪽으로는 귀떼기청봉에서 대승령(大勝嶺)·안산(安山)에 이르는 서북릉이 있으며, 그 남쪽 오색약수(五色藥水)터·장수대(將帥臺)일대를 남설악이라 한다.

 

 

 

백두대간의 중심부에 있으며, 북쪽으로는 향로봉(1,293m)·금강산, 남쪽으로는 점봉산(點鳳山:1,424m)·오대산(1,563m)과 마주한다. 최고봉은 대청봉(1,707.86m)이다. 대청봉 남쪽에 한계령, 북쪽에 마등령·미시령 등의 고개가 있다.1965년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가 1970년 3월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한국에서는 처음으로 1982년 8월 유네스코의 '생물권보존지역'으로 지정되는 등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인 보존지역·관광지로 이름이 높다.외설악의 북부에는 쌍천(雙川)이, 남부에는 양양 남대천(南大川)이 흘러 동해로 들어가고, 내설악의 북부에는 북천(北川)이, 남부에는 한계천(寒溪川)이 서쪽으로 흘러 북한강의 상류를 이룬다.내설악에는 미시령·대청봉·한계령을 수원지로 하여 소양강·북한강으로 이어지는 계곡이 발달했다.

 

내설악의 명승지로는 647년(신라 진덕여왕 1)에 창건된 고찰 백담사(百潭寺)를 비롯해 대승(大勝)·와룡(臥龍)·유달·쌍폭(雙瀑) 등의 폭포, 수렴동(水簾洞)·가야동(伽倻洞)·구곡담(九曲潭) 등의 계곡과 옥녀탕(玉女湯) 등 이름난 곳이 많다.

 

외설악은 대청봉에서 동쪽으로 뻗은 능선을 경계로 북외설악과 남외설악으로 나뉜다. 관모산(冠帽山:874m)·천불동계곡·울산바위·권금성(權金城)·금강굴 외에 비룡폭포·토왕성폭포·귀면암(鬼面巖)·와선대(臥仙臺)·비선대(飛仙臺) 등 기암괴석과 계곡이 절경을 이룬다.

 

 

설악의 안산(鞍山1430m)은 외진 위치 때문에 찾는 사람이 많지 않다. 남쪽의 장수대에서 산행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대승령에서 십이선녀탕계곡으로 하산길을 잡아 이 산을 스쳐 지나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설악을 수십번 다닌 사람들 중에도 안산을 다녀온 사람이 드물 정도로 한적한 봉우리로 남아 있다. 안산은 일명 길마산이라고도 한다. 멀리 원통쪽에서 바라보아도 말안장을 닮은 모습이 시선을 끌고 있고, 막상 올라가보아도 처음부터 암벽으로 이루어진 협곡이 만만찮은 험산임을 느끼게해 준다. 이 산을 중심으로 옥녀탕 계곡과 12선녀탕계곡이 좌우로 펼쳐져 있고, 정상에서 조망하는 전망이 일품이어서 등산의 가치가 높은 산이다.

환상적인 경치와 더불어 깍아지른 절벽 틈새마다 고고한 자태를 뽐내는 들꽃과 나무들이생명의 뿌리를 내리고 있다. 경이로운 설악산의 풍경에 입이 절로 벌어진다.거친 풍상을 견디 었기에 더욱 색깔이 곱고 향기가 강하다.우뚝 솟은 암봉과 함께 있기에 도도한 표정, 천상의 화원이라고불러도 전혀 손색이 없는 설악산 안산의 절경이다.북서풍에 가지는 한쪽으로만 뻗어 올린 구상나무와 주목들이외롭게 설악의 안산을 지키고 있다.공룡능선의 거대한 암릉이 힘차게 북서쪽으로 흘러 대청봉에 큰 점을 찍고밑으로 밑으로 내려가면서 중청과 끝청 그리고 귀때귀청을 지나면서꼬리를 내렸다가 안산에서 다시 크게 솟구쳐 거대한 암봉을 내려 놓는다.안산은 옥녀탕과 선녀탕의 두 줄기로 갈라지며 설악산 서북능선의마침표를 찍는다. 대승폭포에서 대승령까지는 밋밋하다. 길을 덮어버린 숲은 원시림처럼 빽빽하다. 간신히 사람 하나 지나갈정도의 길만 터 있다. 안산이 가까워질수록 바람이 거칠다. 하얀 안개가 산봉우리를 넘어간다.순식간에 앞이 트인다. 악어 이빨처럼 듬성듬성 솟은 암봉이 드러난다.절경이다. 강한 바람 탓인가. 꽃들이 모두 키가 작다. 꽃들이 땅바닥에 엎드렸다.모두 색깔이 아주 곱다. 향기도 무척 강하다. 특히 백리향은멀리서도 느껴진다. 향이 백리까지 간다고하여 붙여진 이름이 아닌가.안산의 정상은 정상석도 없다.서북능선의 끝자락에 우뚝 선 바위산, 1430m 안산은 외롭지 않다.건너편에 톱날처럼 날카로운 처녀봉이 보인다. 누구도 감히 범접하지못한다. 바로 앞에는 또 다시 천년을 준비하는 주목 고사목이 발을 붙는다.

안산으로 향한다. 안산에서 내려다보는 한계산성의 절골이 숨은 비경이기에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신라의 마의태자 김일이 후일을 도모코자 산성을 쌓고 은거하던 곳이다. 기실 마의태자가 들어갔다는 개골산(皆骨山)이란 금강산이 아니라 설악산을 지칭하는 것이다. 이곳에서 신라 부흥을 꿈꾸었던 마의태자는 승복(僧服)을 입고 승명을 함보(函普)로 고쳐 불렀다. 그러다가 나이 60세에 이르러 만주로 나아가 여진족 족장의 딸과 혼인하여 여생을 살았다. 이후 마의태자 함보는 김극수(金克水)라는 이름을 쓰기도 하였다. 이는 패수(敗水,예성강)에 도읍한 왕건의 고려를 이기겠다(克)는 의미가 내포되어있다고 보인다. 마의태자 김일의 6대 후손인 아골타가 나라를 세웠으니 그는 곧 금(金)의 시조다.

 

설악의 응봉(鷹峰1208.1m)은 매봉으로 불리기도 하며 향로봉으로 연결되는 매봉산을 "양매봉"이라 하고 응봉(鷹峰1208.1m)은 "음매봉"이라고 한다.

응봉(鷹峰1208.1m)은 설악의 서쪽 한 귀퉁이에 자리하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설악에 그런 봉우리가 있는지 조차도 모르고 지내는 그런 봉우리다.설악산 응봉 능선은 구만동을 기점으로 아니오니골(김부자터골)과 십이선녀탕 계곡을 좌, 우측에 두고 있으며 1369 봉우리에서 북쪽으로 뻗어 내려 온 능선으로 응봉 주변의 암봉구간이 압권이다.설악 안산에 오를때 건너편에 멋지게 보이는 응봉(鷹峰1208.1m)은 설악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동경하는 산이기도 하다.

 

설악의 십이선녀탕 (十二仙女湯)은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에 있는 폭포와 계곡이다.안산(鞍山)에서 비롯하는 한계리 탕수동 통수곡에는 약 8km에 걸쳐 폭포와 탕이 연속으로 있고, 구슬 같은 푸른 물이 변화와 기교를 부리면서 암반 위를 흐른다.인제∼고성간 46번 국도변인 남교리에서 남동쪽으로 북천을 지나 12km 지점에 있다.내설악에 있으며 탕수동계곡이라고도 한다.

밤이면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하고 갔다고 하여 선녀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넓고 깊은 구멍을 한 신기한 모양의 탕과 폭포가 8km에 걸쳐 이어진다.예로부터 탕이 12개나 된다고 전하여오고 있으나, 실제는 8탕밖에 없으며, 옛말의 십이탕십이폭(十二湯十二瀑)을 흔히 십이선녀탕이라고 불러오고 있다.

 

폭포 밑에서 소용돌이치는 곳을 탕이라고 하는데, 이는 물줄기가 암석에 떨어짐에 따라 일어나는 수은작용(水銀作用)에 의한 것이다. 탕에는 그 모양에 따라 독탕(甕湯)·북탕(梭湯)·무지개탕(虹湯)·용탕(龍湯) 등의 이름이 붙여져 있다.웅봉 아래 웅봉폭포를 지나면 첫 탕인 독탕(甕湯)이 나오고 북탕(梭湯)·무지개탕(虹湯])·복숭아탕을 지나 맨끝에 용탕(龍湯) 이 나오는데, 그 중 폭포 아래 복숭아 모양의 깊은 구멍이 있는 7번째 복숭아탕을 백미로 꼽는다. 주변에 단풍나무·젓나무·박달나무·소나무 등 나무가 우거져 계곡미가 빼어나다.

 

설악의 응봉(鷹峰1208.1m) 등정<2012.10.14(일) 512번째 1000m급 졸업 산>때 갑작스런 악천후로 설악의 응봉(鷹峰1208.1m)에서의 조망을 못한 아쉬움들이 남아 이목회 회원들(길동석 원장,서안종사장,이태호사장,이원님여사님.백곰님,배창랑 6인)은 6개월전 신년회모임때 결정한 대로 약8개월만인 2013.06.09(일) 00;15 동서울역을 출발 합니다.그때(2014.10.14) 기록은

 

“응봉 정상 전부터 암릉길에 세우비 섞긴 태고의 설악 칼바람이 비구름과 함께 악천후가 되어 사람을 날릴 기세다. 악천후 속에 1봉에서 본 2봉과 3봉의 모습이 사람을 기 죽인다. Back해야 되는 상황이다.

응봉에서 올려다 보면 진행방향으로 안산,2봉 3봉 뒤로 1369봉이 보인다 했는데 그리고 아니오니골 너머의 능선과 뒤쪽의 중청과 공룡능선이 보이고 좌측의 황철봉과 저항령, 마등령이 조망된다 하였는데 아무것도 볼수없다.미시령 너머의 상봉과 신선봉 까마득한 12선녀탕의 모습도 보인다 했는데 아무것도 볼 수 없고 강풍에 날리지 않으려고 버둥 댄다. 비바람 속이지만 간신히 2봉에서 1000m 급 512산 등정 기념사진을 남기고 Back을 결정도 하기전에 성질 급한 대원이 2봉에서 3봉으로 건너고 있다.

응봉 3봉에 서면 천길 낭떠러지다.3봉에서 전방을 보니 구름 속에 암봉들이 악마의 모습으로 입을 벌리고 있다 앞으로 나가기가 불가능하다.“

 

인제 화양강 휴게소에 02;00도착 차안에서 30여분 선잠을 자고 02;30 황태해장국으로 이른 아침을 해결하고 커피도 마시면서 시간 보내고 03;30 휴게소 출발 용대리로 향하다가 터널 2개를 지나고 12선녀탕 입구지나 조금더 진행하여 우축 [구만교]를 건너자마자 <우회전>하여 “심방터회집(송어회)” 입간판 통과하고 가건물 공터마당에 차를 파킹합니다.아스팔트 도로에서 기념사진 남기고 03;45 산행 시작 합니다.첫 번째 좌측 콘크리트길을 버리고 약 10여m 아스팔트도로 따르다가 콘크리트 포장 2번째 임도 따라 끝가지 진행 합니다.8개월전에 비해 묘지들도 이장되고 토목공사가 많이 진행되었습니다.아마도 사유지 겠지만 국립공원내에 이런 형질변경들이 진행되는 사유를 모르겠습니다.오늘은 응봉지나 1396봉 까지는 1차때와 같이 진행하고 1396봉 직전 부터는 (1차때는 우측 능선을 통과 음지골로 하산) 이정표(십이선녀탕/대승령)로 가서 안산을 하고 십이선녀탕으로 하산을 합니다.

 

0km 0분[아니오니골 입구/심방터 회집 입간판] (03;45분)

경사길 2번째 시멘트로 포장길 따라 약3~4분오르면 이길은 끝나고 넓은 공터 공사현장이 나온다.우측의 묘들도 이장되고 넓은 공터로 변했다.공터 우측 숲길을 들어선다. 1차때 건 “배창랑과 그일행=山君들”표지기가 등산로 초입에서 반갑게 인사한다. 우측으로 히미한 길따라 잡목을 헤집고 쓰러진 고사목들을 타고 넘어 허리길 진행하다가 좌측 능선으로 붙는다. 또능선길 오름 극복하면 “영일정공봉원지묘 검정 비석” 서있는 묘가 나오고 묘를지나 숲속으로 길은 이어 간다.산길은 계속 고도를 높혀 간다

얼마쯤 오르다 뒤 돌아보니 향로봉 쪽으로 연결되는 매봉산이 여명속에 실루엣으로 우뚝 서 보인다.더 우측으론 알프스 스키장과 백두대간의 진부령으로 내려서기전 마지막 봉인 마산일대가 보인다.

길은 희미하게 나있고 등로에 이끼가 많이 있으며 아름드리 소나무가 밭을 이룬다.오르면서 진달래 능선이라 불리울 만큼 진달래가 많으며 진달래 가지가 성가시게 한다.특징없이 이어지는 길이다. 급경사 한구비 봉에 올라서고 희미하게 길은 그런대로 이어진다.바위 위에 큼직한 바위를 얹어 놓은듯한 바위가 나타나며 암릉이 시작되어 <우측>으로 우회하며 오른다. 다사시 좌측이 낭떨어지인 암릉길 이어 가다가 우측이 깎아 지른듯 낭떨어지가 나타난다.여기가 응봉이다.일행들 오름길 도중에 만난 곰취 수확 때문에 진행이 1차때보다 늦어졌다.[4.0km][215분]

 

 

4.0km 215분[응봉]

응봉에 서면 천길 낭떠러지다.응봉은 3개의 바위군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남쪽은 수천길 절벽으로 12선녀탕으로떨어지고 있으며 진행방향인 동쪽 역시 그냥 내려 설수 없는 절벽이다.북쪽은 아니오니골로 경사가 급하게 떨어지고 있으니 응봉에 오를수 있는 길은 우리가 오른 능선길이 유일한 접근로라 생각된다.

우측으로 올려다 보이는 안산의 경우와 영월의 장산이 응봉과 같이 한쪽은 깎아지른 절벽형태로 되어 있다는 것이 공통된 모습이다.6개월 전에 잡은 날인데 날씨 쾌청하다. 조망 끝이 없다.응봉에서 올려다 보니 진행 방향으로 2봉 3봉 뒤로 1369봉과 안산이 보인다. 그리고 아니오니골 너머의 능선과 뒤쪽의 중청과 공룡능선이 보이고 좌측의 황철봉과 저항령, 마등령이 조망된다 .미시령 너머의 상봉과 신선봉 그리고 발아래 까마득한 12선녀탕의 모습도 보인다 . 소원 성취 하는 날이다.

조망즐기고 증명사진 남기고 10여분 즐기다가 <좌측>의 아니오니골(김부자터골)쪽으로 내려서며 사면을 치며 암봉들을 우회 한다.응봉 3봉 좌측의 아니오니골 방향으로 급경사 수직길을 내려가 바라다 보이는 암봉 좌측까지 사면을 치며 긴 거리를 우회한다.1차때 처럼 아예 암봉지대 전체를 우회 한다. 1차때 걸어둔 표지가 여름 숲속에서 길을 안내해 준다.당연히 길은 없고 일행이 걸으면 그게 길이다. 우회 하다가 아예 앞에 보이는 암봉 전체를 비켜 내림길 내려 우측으로 허리길 끙끙거리며 우회해서 좌측 내려다 보이는 아니오니골이 끝날무렵 우측 마지막 암봉 사이 안부 능선으로 올라 붙는다. [2.0km][115분]

 

6.0km 330분[우회끝/ 마지막 암봉/ 주능선](09;15)

바위 암릉 사면길의 길을 우회하는데 시간이 많이 소요 되었다. 암봉은 하나가 아니라 이어져 있으며 우회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주능선에 붙어도 역시 진달래 가지와 씨름하며 능선길을 오른다.저만큼 암봉이 하나 또 버티고 있으나 다행히 우측으로 우회가 가능하다.그 암봉을 지나 봉우리에 오르고 조금 더 진행하면 평평한 지대가 나타나며 그 면적이 무척 넓어 숲속으로 이어져 끝이 안보인다.김부자터다.

 

[김부자터];마을 사람 말에 의하면 예전에 이곳에 화전민 김부자가 살아서 김부자터라 하며 그넓이가 약 3만여평에 이른다 한다. 또 이런 화전민은 대승령과 안산 주위에도 살았었다고 한다.김부자터는 물박달나무로 가득 채워져 있고 가야할 1369봉 방향은 잡목으로 얽혀있어 앞이 아예 꽉 막혀있다.그래도 상황이 조금은 나은 <좌측>으로 진행하여 덜 막힌 곳을 찾아가며 오르니 1369봉에서 안산방향으로 몇 십 미터 떨어진 잘 발달된 등로와 마주치게 된다.잘 발달된 등로에서 1차때 답사한 길(우향 8.2km/4시간40분.1241봉.음지골 청소년야영장향)을 버리고 우측 으로 역산행하는 기분으로 내림길 내려서 호졋한 산길 이어가 한적한 길을 잠시 내려가니 십이선녀탕 진입로 이정표(공원남교리7.3km/대승령1.3km)에 도착 한다. [2.8km][70분]

 

8.8km430분[십이선녀탕진입로 이정표](공원남교리7.3km/대승령1.3km)](11;10~11;40)

여름 산행의 기본 얼음물 과 과일 외에 집안의 냉장고를 옮기듯 김치,오이소배기,마늘쫑,멸치몪음,약밥6인분 배낭가득 챙겨온 이원님 여사.오리 훈제 안주와 매실주를 담아온 서안종사장님 2분 배낭에서 나온 내용물을 보고 감사하면서도 벌린 입이 닫치질 않는다.베낭 무게가 너무 무겁다. 거기다 곰취까지 수확해 담은 이 무거운 배낭을 메고 험한 응봉을 오르고 암릉길 사면을 우회한 2분의 체력과 인내에 감탄한다.2분 고생하여 챙겨온 산상 만찬에 한 30여분 즐거운 시간 보내고 배낭 무게 때문에 체력 고갈된 이원임 여사,서안종사장님,길동석원장님 만찬 더즐기고 12선녀탕으로 내려가기로 한다.

백곰님, 이태호사장님,배창랑은 서둘러 예정대로 안산 십이선녀탕 코스를 밟기위해 안산을 행한다.안산은 오래전 안내산악회따라 답사한 산이다.장수대에서 안산 올라 갈직촌으로 하산 한 적이 있다.

정규등산로에 들어서니 큰 어려움은 없다. 조금 더 올라 대승령 갈림길에 닿는다. 여기서 우측으로 능선길 이어 간다. 좀더 오르자 이번에는 우측으로 치마바위골로 오르는 길을 만난다. 갈림길을 지나 안산쪽으로 진행하면 야생화로 천국을 이룬 안부와 헬기장을 지나고 봉우리를 넘어 안산으로 향한다. 좌측으로 안산이 우뚝솟아 있다. 안산을 향해 오른다.

안산 바로 아래 안부4거리에 도착한다.곰취수확으로 무거운 배낭을 내려놓고 안산을 왕복한다. (cf;우측 능선길이 새로 생긴 십이선녀탕 하산길이다. 좌향; 안산 왕복길. 직진길; 한계고성을 지나 옥녀탕계곡으로 하산,갈직촌 하산 길이고 ,안부에서 우측 십이선녀탕 하산길이다.) 이곳으로 우선 하산로를 잡아 놓고 바위틈을 기어 오르고 급사면을 넘어서 안산(1430.4m)에 오른다. 드디어 안산이다. [2.5km][40분]

 

11.3km 515분 [안산](12;20)

안산의 조망이 펼처진다. 바로 앞에 가리봉과 주걱봉과 삼형제 봉이 병풍으로 들러쳐 있고 안산 아래에는 치마바위가 위용을 자랑하고 좌측으로 머리에 구름을쓴 귀때기청봉이 우리를 맞이하고 뒤로는 용아의 잇빨들이 으르렁 거리며 늘어서 있다.

안산에서Back하여 안부4거리 갈림길에서 새로생긴 십이선녀탕 하산길 직진 능선길 이어가다가 건천 계곡을 거슬러 내려간다. 십이선녀탕 정규탐방로 수량이 없는 계곡 최 상류다. 조금내려가다가 일행들 이원님여사,서안종사장님,길동석원장님 만나 추월한다. 십이선녀탕길도 몇 번 답사한 길이다.계단길를 좀더 내려서니 작은 폭포가 나오고 또 다시 오케스트라를 연주 하는 것과 같은 잔잔한 물결을 이르키는 여성 스러운 폭포가 반긴다. 계곡에서 급하게 떨어진 폭포는 탕을 만들고 다시 폭포를 이루다가 다시 탕을 만들고 다시 떨어져 복숭아탕을 만들고 다시 떨어져 선녀탕을 만든다. 몇굽이를 휘어져 떨어지고 또 떨어진다.실로 장관이다. 보는곳 마다 절경이다. 12선녀탕은 이렇게 펼펴진다.

서둘러 계곡을 거슬러 내려간다. 다리를 건너고 또 건넌다. 폭포는 구비구비 떨어져 내린다. 12선녀탕 입구라는 펫말이 서있다.응봉폭포를지나 다리를 건너고 또 건넌다.매표소를지나 12선녀 다리를 건너 산행을 마감한다.[9.8km][195분]

 

22.1km 650분 [남교리 12선녀탕입구 주차장](15;35)

대기하고있는 택시 1만원에 흥정 아니오니골 입구 공터에 세워둔 차로 이동한다.옷 보다리 꺼내 아니오니골로 들어가 알탕하고 새옷 갈아입으니 참으로 행복하다.나오다 심방터 회집 이층 베란다쉼터에서 병맥주2병 콜라 1병(이태호사장님은 운전 때문에 )시켜 싱싱하게 담은 김치 안주로 무사산행을 건배한다.

새벽에 파킹해 둔 차타고 십이선녀탕입구 주차장으로 이동 일행들 도착 알탕 끝낸 시간 16;45 맞춰 시장통 같은 주차장 음식점에서 황태구이정식(황태찜,황태국,밥) 과 맥주, 옥수수막걸리, 도토리묵,빈대떡 미리 주문하고 길고 열유롭고 행복한 설악산 무사산행 건배 마감 뒷풀이 한다.

 

18;15 남교리 출발 막힌 고속도로 달려 천호역에 21;50도착 근처 호프집에서 마른안주에생맥주 500cc 로 22;35까지 이차 뒷풀이 서둘러 하고 24;00 귀가한다.

 

육당 최남선은 『설악기행』에서 다음과 같이 설악산을 예찬하였다.

탄탄히 짜인 맛은 금강산이 더 낫다고 하겠지만 너그러이 펴인 맛은 설악산이 도리어 낫다. 금강산은 너무나 드러나서 마치 길가에서 술을 파는 색시같이 아무나 손을 잡게 된 한탄스러움이 있음에 견주어 설악산은 절세의 미인이 골짜기 속에 있되 고운 모습으로 물속의 고기를 놀라게 하는 듯 있어서 참으로 산수풍경의 지극한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이라면 금강산이 아니라 설악산에서 그 구하는 바를 비로소 만족할 것이다. 설악산은 그 경치를 낱낱이 헤어보면 그 빼어남이 결코 금강산의 아래에 둘 것이 아니지만 원체 이름이 높은 금강산에 눌려서 세상에 알려지기는 금강산에 견주면 몇천 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니, 이는 아는 이가 보면 도리어 우스운 일이다.

 

일찍이 매월당 김시습이 설악산에 들어와 오래 살았고 동학농민운동에 가담했던 만해 한용운이 동학농민운동이 실패로 돌아가자 몸을 숨긴 곳이 설악산의 오세암(五歲庵)이었다. 한용운은 1896년 오세암으로 들어가 백담사를 오가며 10여 년을 살다가 백담사에서 머리를 깎았는데 그때가 1905년이었다.

 

내설악 백담사에서 마등령 사이에 있는 오세암은 다섯 살에 득도한 신동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옛날 이 암자에서 설정대사가 부모 잃은 조카를 기르고 있었는데 대사는 관음상을 가리켜 어머니라고 일러주었다. 조카가 다섯 살 되던 해에는 월동 준비가 늦어 늦가을에야 양식 마련에 나서게 되었다. 대사는 조카가 하루 동안 먹을 것을 마련해놓고, 다음 날 돌아올 작정을 하고 하산하였다.

 

그런데 그날 밤 큰 눈이 내려 계곡이 묻혀버리고 말았다. 대사는 속수무책으로 눈 녹기를 기다려 봄이 다 되어서야 암자로 돌아왔다. 그런데 죽었으리라 생각했던 그 어린 조카가 나와 반가이 맞으면서 말하기를 “어머니가 밥을 해주고 공부를 가르쳐주었습니다”라고 하는 게 아닌가. 그때 흰옷을 입은 선녀가 나타나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경전을 주고는 새가 되어 날아갔다. 그래서 아이는 득도를 했고, 그리하여 이 암자를 오세암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조선 후기의 학자인 서응순은 다음과 같은 「오세암에서」라는 시를 지었다.

 

빈산 옛 절간에

목련이 혼자 피었네

동봉에 달 오르자니

열경(悅卿, 김시습의 자)이 와 섰는 듯이

 

내설악에 있는 영시암(永矢庵)은 조선 후기의 문장가인 김삼연이 세상에 뜻이 없어 찾아든 곳이다. 그는 『영시암기』에서 “다시는 인간 세상에 나가지 않기를 맹세하였다[인간출세위서(人間出世爲誓)]”라고 하였다. ‘영시’란 길이 맹세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그 당시 나라 안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그가 살던 이곳 영시암을 찾았다고 한다. 그가 지은 기에 “혹 휴양하려는 사람이 먼 곳에서 다투어 몰려왔고, 혹 기(氣)를 기르려는 선비들이 사방에서 구름처럼 모여들었다”라고 실려 있는 것으로 보아 그 당시 세태를 알 수 있다. 이곳에서 김삼연은 수많은 글을 남겼는데 다음의 시는 그중의 한 편이다.

 

내 삶은 괴로워 즐거움이 없고

세상 모든 일이 견디기 어려워라

늙어 설악산 중에 들어와

여기 영시암을 지었네

 

부친인 김수항이 사사된 후 설악산에 들어왔던 그가 이곳을 떠난 것은 6년 뒤였는데, 그 이유는 그의 수발을 들던 노비가 호랑이에게 물려가 더는 살 수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제에서 고성군 간성읍 진부리로 넘어가는 고개가 진부령이고, 조선 중기 양양과 간성의 중요한 관로가 미시령이었다. 미시령은 한계령과 함께 내설악과 외설악을 가르는 고개로 조선시대에는 미시파령(彌矢坡嶺)으로 불렸고 조선 중기 양양과 간성의 중요한 교통로였는데, 그 미시령을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고을 서남쪽 80리쯤에 있다. 길이 있었으나 예전에는 폐지하고 다니지 않았는데, 성종 24년에 양양부의 소동라령이 험하고 좁다 하여 다시 이 길을 열었다.

 

고성군 토성면 도원리에서 인제군 북면으로 넘어가는 고개가 대간령이고, 양양군 서면 오색리 관터에서 인제군 기림면 진동리로 넘어가는 고개가 박달령 또는 단목령으로 불리는 고개였다. 고려 고종 때 김취려 장군이 고려를 침입한 거란 군사들을 원주에서부터 추격하여 이곳에서 섬멸했다고 한다.

 

남설악은 한계령, 망대암산, 점봉산에 이르는 지역으로 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이 피서지로 삼았다는 대승폭포가 있다. 개성의 박연폭포, 금강산의 구룡폭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폭포 중의 하나인 이 폭포 근처에 장수대ㆍ오색약수ㆍ오색온천이 있다.

 

전설에 따르면 옛날에 일찍 부모를 여읜 대승이라는 총각이 이 폭포의 절벽에서 자라는 석이버섯을 따서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다(석이버섯은 바위에서 자라는 버섯인데, 설악산의 특산물로 험한 낭떠러지에서 드물게 볼 수 있다). 어느 날 대승이 절벽에 동아줄을 매달고 내려가서 석이버섯을 따고 있는데, 갑자기 죽은 어머니가 “대승아, 대승아” 하고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소스라치게 놀란 대승이 버섯을 따다 말고 동아줄을 잡고 올라가니 어머니의 모습은 찾을 수 없고 그가 매달려 있던 동아줄을 신보다 더 큰 지네가 갉아먹고 있었다 한다. 어머니가 부르지 않았더라면 벼랑에서 떨어져 죽을 뻔했던 대승이 목숨을 건진 후 이 폭포를 대승폭포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곳 한계령의 동쪽 골짜기에서 시작된 물은 오색약수터를 지나 양양의 남대천이 되어 바다로 들어간다. 개울가의 바위를 뚫고 세 군데에서 솟아나는 오색약수는 1500년쯤 오색석사(五色石寺)의 한 승려가 발견했다고 한다. 다섯 가지 꽃이 피어 오색석사라고 불렸던 이 절은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시인 박두진은 설악산을 두고 「설악부」라는 시 한 편을 남겼다. 다음은 그 일부다.

 

왜 이렇게 나는 자꾸만 산만 찾아 나서는 걸까?-내 영원한 어머니-내가 죽으면 백골이 이런 양지쪽에 묻힌다. 외롭게 묻어라. 꽃이 피는 때, 내 푸른 무덤엔 한 포기 하늘빛 도라지꽃이 피고, 거기 하나 하얀 산 나비가 날아라. 한 마리 멧새도 와 울어라. 달밤에 두견도 와 울어라.

 

한편 인제군 인제읍 귀둔리와 기린면 진동리 및 양양군 서면 사이에 위치한 점봉산(1424m)은 남한의 마지막 남은 처녀림으로 불리는 산이다. 특히 남설악이라고 불리는 점봉산, 가칠봉 그리고 단목령에 둘러싸인 진동계곡 일대는 몇백 년 동안 사람의 손때가 묻지 않은 원시림으로 전나무와 신갈나무 등 고사목들이 울창하게 숲을 덮고 있다. 금강초롱꽃, 모데미풀, 진부애기나리 등 36종의 한국 특산종과 울릉도에서 주로 자라는 섬말나리, 주목, 등대시호, 한계령풀, 점봉산엉겅퀴 등 희귀식물이 자라는 점봉산은 세상에 살면서 지친 사람들이 노년을 보내고 싶어 하는 산 중의 하나다.

이중환은 “돌산과 돌샘으로 이루어져 깊은 골짜기와 위태로운 봉우리가 겹쳐진 묏부리”라고 묘사했다. 정철은 ‘설악이 아니라 벼락이요, 구경이 아니라 고경(苦境)이요, 봉정이 아니라 난정(難頂)이구나’라고 익살스럽게 꼬집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옛 사람들이 겪었던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권금성에 오르는 케이블카 말고도 4개가 더 설치될지도 모르니까.설악산국립공원은 그 영역이 4개 시·군에 걸쳐 있다. 그 가운데 양양군은 대청봉, 속초시는 화채봉, 인제군은 대승령, 고성군은 울산바위에 이르는 케이블카(로프웨이)를 건설할 계획 또는 구상을 각각 갖고 있다. 10년마다 시행하는 공원구역 재조정 작업과 규제 완화 정책에 힘입어 각 시·군은 각종 개발 계획을 세우고 있다. 지금도 매년 300만 명이 찾는 ‘국민 관광지’에 사방으로 케이블카와 대규모 위락시설이 들어서면 설악산은 더 이상 산이 아니라 ‘유원지’나 ‘놀이동산’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설악산은 특별한 보호가 필요한 우리의 자연 자원 가운데 하나다. 1970년 5번째 국립공원이 되기에 5년이나 앞서 천연보호구역(천연기념물 제171호)으로 지정되었고 1982년에는 국내 처음으로 유네스코 세계생물권보전지역으로 선정된 곳이다. 국립공원관리공단에 따르면 공원구역에는 3489종의 동·식물이 분포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멸종위기종이 10종, 보호야생종이 29종, 천연기념물이 23종에 이른다. 고산식물 군락지인 대청봉 일원, 야생동물 서식지인 흑선동 계곡, 야생식물 군락지인 점봉산과 화채능선, 마등령~미시령 일원을 특별보호구로 지정해 2026년까지 출입을 제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설악산의 백두대간은 북단은 진부령이고 남단은 단목령이다. 그 사이를 신선봉, 상봉, 미시령, 황철봉, 저항령, 마등령, 나한봉, 대청봉, 중청봉, 끝청, 한계령, 망대암산, 점봉산, 단목령 등 고봉준령이 연결하고 있다. 백두대간을 경계로 서쪽 인제군에 속하는 지역은 내설악이고, 동쪽은 대청봉에서 화채봉으로 뻗은 화채능선을 경계로 북쪽이 외설악, 남쪽이 남설악이다. 외설악은 설악동지구, 남설악은 오색지구에 속한다. 내설악은 대청봉에서 대승령에 이르는 서북능선을 경계로 북쪽이 백담지구, 남쪽이 장수대지구로 나뉜다. 이 가운데 집단시설 지구나 주거지역, 고성군 신선봉 일대, 속초시 청대산과 가마소골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자연보호지구와 경계를 같이한다.

 

설악산의 또 다른 묘미는 계절은 물론 각 권역이나 지구마다 지형 경관, 기후, 문화가 다르다는 점이다. 골산인 외설악은 천불동 계곡 양쪽에 솟은 기암절벽이 어우러진 남성적인 근육질, 육산인 내설악은 백담·수렴·백운·가야 등 여러 계곡의 여성적 그윽함이 느껴진다. 남설악에서는 대청봉의 웅장함과 오색약수·온천·주전골의 아기자기한 멋을 동시에 맛볼 수 있다. 백두대간을 경계로 기후도 서쪽은 내륙성, 동쪽은 해양성이다. 서쪽은 전통적 산촌이고 동쪽은 해안과 산촌, 토착민과 실향민의 문화가 융합된 양상을 띠는 것도 다르다. 설악동지구에는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와 계조암·금강굴, 백담지구에는 만해 한용운이 기거했던 백담사와 오세암·봉정암, 오색지구 인근에는 조계종의 발상지인 진선사 등 유서 깊은 고찰이 있다. 전국에서 제일 높은 해발 1224m에 위치한 암자인 봉정암은 5대 적멸보궁의 하나로서 석가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석가사리탑으로 유명하다. 오세암은 ‘5세 신동’ 매월당 김시습, 그리고 신라 매월대사의 5세 조카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하는 곳이다. ‘천의 옷’과 ‘천의 얼굴’, ‘천의 이야기’를 가졌다는 설악산은 1000번을 가 보아도 질리지 않을 산이다.

 

울산바위는 속초시와 고성군의 경계를 이루는 둘레 4km, 높이 873m의 거대한 암체다. 그 아름다움만큼이나 재미나는 얘깃거리를 갖고 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울타리 리’자를 쓴 이산(籬山, 울산이라고 읽기도 한다), 또는 지명을 따서 울산(蔚山)으로 적고 있고 <속초시지>에서는 이와 더불어 ‘막힐 울’자를 써서 울산(鬱山)이라고 쓰기도 한다. 비바람이 불 때 산이 울고 하늘이 으르렁거리는 것 같다고 해서 일명 천후산(天吼山)이라고 소개한 자료는 정확한 고증이 필요할 것 같다. 고성군 향토사가 김광섭씨에 따르면 천후산은 울산바위 북쪽에 있는 신선봉(1212m)의 옛 지명이다.